‘기미 양씨명(己未 楊氏銘)’이라고 서투른 글씨가 음각된 옹기를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옹기장이가 남겨놓은 성씨와 제작 연도는 “보시오, 아무해 내가 이 투박한 질그릇을 정성껏 빚어냈소!”라는 긍지를 침묵으로 대변하는 듯했다.
시장에서 청과류를 살 때 되도록 재배지와 연락처, 생산자 이름, 때로 검게 그을린 재배 농민의 사진까지 제시된 것으로 사려 한다. “논산 양촌에 사는 내가 만들었소!” 이 얼마나 당당한 자세인가.
외국에 가면 로널드 레이건 공항,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샤를 드골 공항, 요한 슈트라우스 공항, 존 F. 케네디 공항이 있다. 곧 영국 리버풀 공항은 비틀스 멤버의 이름을 따 존 레넌 공항으로 바뀐다고 한다. 우리는 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공항이 없는지, 왜 좁은 땅에서 ‘무슨시, 무슨면’ 하고 땅따먹기만 하려 드는지 도시 알 수가 없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 한식당에서 ‘옥석 매운탕’을 내놓아 화제가 된 게 벌써 옛날이다. 양옥석이라는 요리사가 민물장어 매운탕에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영양과 칼로리와 맛을 책임지겠다는 의도였다. 요즘 흔한 프랜차이즈 상호도 그 이름 값을 걸고 사업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비록 한산모시, 안흥찐빵, 이동갈비, 장충동왕족발, 청진동해장국 등은 최초 출원자라도 상표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명성은 그 지역민에게 두루 돌아가야 한다.
구한말 박승직이란 인물은 광장주식회사라는 최초의 주식회사를 차렸다. 그때 지은 건물이 서울 동대문시장의 전신이고, ‘박가분(朴家粉)’이란 화장품은 한 시대 기업과 소비자의 신뢰를 상징하기도 했다.
나이 든 대한민국 사람 치고 ‘이명래고약’ 한번쯤 안 써본 사람 어디 있을까? 현재 이 회사 이용재 대표는 고약을 명약으로 만든 이명래(李明來) 선생의 딸이다. 소염제가 지천인 오늘날이지만 올드팬들에 의해 창업시의 그 자리에서 매년 1억원어치는 팔린다고 한다.
우리도 박가분처럼, 이명래고약처럼, 옥석매운탕처럼 ‘누구표 무엇’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는가. 누구표 신발, 누구누구표 해장국 등등 수요자와 공급자를 잇는 믿음의 끈처럼 훌륭한 판촉은 없다. 자신의 이름을 떳떳이 내세울 수 있는 것, 그것은 단순히 타인과의 구별을 넘어 장래를 위한 신념이기도 하다.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가수 현철이 '사랑의 이름표'를 불렀다.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
이름은 인격이며 내적 존재의 본질이다. 이름표를 달아주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만 사랑하는 내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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