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손에 잡히는 뭔가가 밤알처럼 후두두 떨어지진 않지만, 그들은 때로 고무신 한 켤레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 문화를 지탱하는 힘이다. 자동차에 핸들만 주어진다면 사람을 태울 힘도 없고, 그럴 때 부적이나 장식품만한 가치도 없다. 더구나 우리는 ‘문화경제’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있다. 로커 강산애를 좋아하는 그는 매일 아침 소설에 대한 반성으로 삭발을 한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은 즐겨 읽지 않지만 그 치열한 작가정신만은 높이 산다. 무형에서 나오는 유형, 그러니까 작품을 만드는 일은 때로 신(神)이 되는 일이다.
작품 안에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혁명을 일으키기도 하며, 황사(黃砂) 같은 세상의 먼지를 말끔히 정화하는가 하면, 사막처럼 척박한 가슴에 단비를 흘려주거나 파도가 일게도 한다. 그 길은 희미하지만 우리의 혼을 흔들어 깨우고 인도하는 흰지팡이와 같다.
같은 이유에서 문화예술계의 모금 행위를 현행대로 환원한 정부와 여당의 결정은 몇 번이고 잘한 일이다. 역시 같은 이유에서 30년 가까이 문화예술계의 젖줄이 되어온 문예진흥기금도 없어지면 안된다.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 그나마 문화의 고사를 막는 젖줄이었다. 작가들이 토해 놓은 배고픈 현실은 처절하다.
“작가들은 병들어도 은행융자 하나 받을 수 없다. 생활고 끝에 자살하는 문인까지 나오지만 아무런 사회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이남희) 한 전업시인이 생활고 때문에 실업자 기금을 신청했다가 “당신같이 유명한 사람이 이런 기금을 신청하면 되느냐”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포기하며, “원고청탁 받을 때 고료를 묻는 것을 우아하지 못한 행동으로 여기는”(김주영) 사람도 많다. 자생력이 취약한 음악, 연극, 공연예술의 숨통을 틔울 처방을 마련해 그들로 하여금 창작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김소월이 있기에 진달래꽃이 그리 정겹고, 홍난파가 있기에 봉선화는 우리 민족 정서 속에 애련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예이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없었다면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없었다. 음악이 사람 마음의 껍질을 뚫지 못하고 37.5도의 건강한 에로스가 발붙일 틈이 없으면 윤리마저 금시에 헐벗게 되며 훌륭한 사상이나 철학도 나오지 못함은 물론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