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반세기를 훨씬 넘기도록 우리는 주로 지리적 결정론, 사대주의론, 문화적 독창성론, 당쟁론으로 구분되는 이론틀에서 허우적댈 뿐 헤어나지 못했다.
그 굴레와 멍에는 계속된다. 이쯤에서 뼈아프게 후회해도 시원찮을 일본이 지금 약소민족에게 필설로 설명 못할 고통을 안겨준 제국주의, 식민주의, 군국주의를 미화하려 한다. 극우 교과서 통과에 자극받은 극우 나팔수 산케이신문은 급기야 ‘틀림없는 일본의 영토다’라는 사설에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라며 기세가 욱일승천(旭日昇天)이다.
나치에 어이없이 학살당한 600만 유태인에 대한 추모비를 세운다든지 자신들의 과오를 문제적 시각으로 교과서에서 다루며 뉘우치는 독일과는 차이져도 한참 차이진다. 일본은 다시 태평양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한국 병합을 동아시아 안정정책으로 멋대로 바꾸고 있다.
차제에 잘못된 우리 역사도 바로잡아야 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만 하더라도 단군조선을 역사 아닌 신화라고 부인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중국의 많은 사서에서도 실체를 인정하고, 위만조선이나 한사군의 입지가 모두 랴오둥(遼東) 지역이라는 견해도 있는 마당에 국내 사학계는 이를 역사적 상상력으로 비하하려고 든다.
우리가 온 세계를 압도하는 스케일 큰 문화를 창출한 적이 없다 해서, 인류사의 큰 물줄기를 바꿀 엄청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 해서, 사상적 또는 문화적으로 스스로를 중국의 아류쯤으로 낮추어보는 것은 잘못이다. 칼 찬 사무라이는 흠모하면서 찬란한 성리학 문명을 꽃피운 조선조는 고린내 나는 당쟁의 시대로만 깎아내린 데 대한 한 가닥 반성은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조선인은 할 수 없다’며 전근대적, 봉건적, 비인간적인 체제라고 그 옛날 일본인이 세뇌시킨대로다. 근간에 일본국기 히노마루와 일본국가 기미가요를 직무명령으로 강요한 사례에서 보듯이 보수우익 인사들이 활갯짓하는 일본 정부에 처음부터 기대를 걸었다면 이건 대단한 오산이다. 극우가 때로 극좌보다 위험함을 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웹사이트를 다운시키고 거리 육교 위에 현수막 몇 개 내걸어 봤댔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와 ‘과거’를 가진 일본에겐 솜방망이일지도 모른다. ‘자학적’인 역사관에서 탈피, 정체성을 세워야 할 쪽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일제가 박은 황국신민의, 황민화의 쇠말뚝이 국사 교과서를 편찬한 우리 주류학계의 정수리에 아직 꽂혀 있다면 글쟁이의 엄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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