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과 양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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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양신 사이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장관 자리가 많이 바뀌었다. 개각을 앞두고 교체 대상에 오르내린 일부 장관들은 실세들에게 줄대기를 하는 등 안간힘을 쓴 흔적들이 감지된다. 부인들까지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조선 선조 때 학자 미암 유희춘이 생각난다.


미암은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재상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는데도 물러나 초야에 묻혀 살았다. 골방 하나에 달랑 책상 하나밖에 없는 생활이지만 부인인 여류 문인 송덕봉은 잘 꾸려나갔다고 전한다.

사람마다 가치는 다를 수 있다. 어느 것이 일방으로 옳다고만 할 수도 없다. 진시황과 한비자의 이야기 중에 팔간편(八姦篇)을 보면 신하가 행동을 잘못하는 여덟 유형이 나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최응을 통해 말하게 한 대목을 다시 빌려 잠깐 소개한다.

신하의 좋지 않은 행동의 첫째는 임금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다. 둘째는 임금의 측근에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형의 힘을 빌리는 것이고, 그 네 번째는 임금의 향락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무지한 백성들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유창한 말로 미혹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권세를 사용하는 것, 마지막 여덟 번째는 이웃나라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당 태종이 개국공신인 재상 위징(魏徵)의 생일 축하연에서 소원을 물으니 위징은 아뢴다. “신의 소원은 폐하께서 신을 양신(良臣)으로 만들지 마시고 지금처럼 끝내 충신(忠臣)으로 만들어주시는 것이옵니다.” 다시 양신과 충신의 차이점을 묻는 말에 위징은 덧붙인다. “양신은 폐하께서 내리는 분부를 무조건 실행에 옮기며 폐하의 심기를 늘 거슬리지 않고 편안하게 하는 신하입니다. 하나 충신은 폐하의 분부라 하더라도 옳지 않다면, ‘아니되옵니다’라고 간언을 올리는 신하를 말합니다.”

여러 임금을 모신 황희 정승도 유배와 파직 처분을 받은 일이 있다. 유배 사유는 태종이 세자로 있던 양녕대군을 충녕대군으로 바꾸려 했을 때 극간하여 반대한 때문이었다. (황희의 친구이기도 한) 양녕이 맏아들인데다 도량이 큰 인물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랬는데도 사람 됨됨이를 잘 아는 충녕은 훗날 세종대왕이 되어서도 황희를 마다않고 써서 조선의 기틀을 잡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한 마디로 대통령이 방귀를 뀌어도 “대통령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는 지당장관은 충신이 되지 못한다는 선례이다. 새로 임명장을 받아 쥔 장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묻고 싶다. 충신인지 양신인지, 아니면 간신이 되려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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