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짝의 교훈

  • 오피니언
  • 문화칼럼

화투짝의 교훈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죄송하지만 화투의 비 스무끗짜리를 한 번 보시기 바란다. 우산 쓴 선비가 수양버들 가지를 향해 펄쩍 뛰어오르는 개구리를 바라보는 그림일 것이다. 이 ‘우중(雨中) 영감’은 실제 주인공이 있다. 10세기 무렵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의 오노 도후(小野道風)란 명필이다.


비 오는 날, 붓글씨 연습이 싫증난 그는 우산을 쓰고 뜰 앞에 나왔다가 개구리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수양버들 가지에 뛰어오르는 걸 보고 깨달은 바 있어 피나는 수련으로 일본 최고의 명필이 되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교훈이 담긴 그림이다.

나는 화투를 과히 좋아하지 않지만 이 화투짝의 교훈만은 아낀다. 어째서 도공은 자기가 빚은 도자기를 아낌없이 깨뜨리는가. 더 좋은 도자기를 빚기 위해서다. 40장의 원고를 쓰려고 1600장의 파지를 내는 “노력의 천재”(작가 이외수가 스스로를 지칭한 말)의 ‘노력’을 좋아한다.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도 ‘적벽부’를 쓰면서 무려 한 바구니의 파지를 냈다.

454g의 꿀을 얻기 위해서 벌통과 꽃 사이를 3만7000번이나 왕래해야 하는 꿀벌의 노동은 그저 본능일 뿐인가. 1초에 200번씩 날개를 쳐야 하는데 말이다. 200만개 이상의 대구 알에서 새끼로 남는 것은 고작 5개에 지나지 않는다. 에디슨은 수만 번의 실패를 수만 번의 성공으로 환치시켰다.

진주조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한 알의 모래알을 진주로 키우기까지, 그 아픔의 결정(結晶)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조개류는 10만3000종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가 생기는 조개는 약 1만5000종, 이 가운데 보석의 가치를 지니는 진주가 되는 조개는 약 1300종이다.

하나의 진주를 만들자면 5년에서 10년까지 이물질과의 싸움에서 고통을 참아내야 하며, 이를 잘 견디는 조개만이 진주를 만들 수 있다. 조개 속의 모래는 부드러운 속살을 이리저리 긁고 찌르지만, 그럴 때마다 조개는 체내에서 분비액을 내서 아픔을 주는 모래를 감싸는 것이다. 모래의 그 모난 부분들이 모두 감싸졌을 때 비로소 다시는 찌르지 않는 아름다운 진주가 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힘으로 조개껍데기 같은 미세조직까지 만들게 됐다. 도자기보다 단단한 인공 조개껍데기가 곧 나올 모양이다. 조개 속에 인공핵을 삽입하여 어렵잖게 양식진주를 만들고 갈치 비늘을 넣어 만든 모조진주가 있지만 그 가치가 천연진주에 미칠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그냥 둘 걸 공연히 세월을 재촉했나 보다. 수험생의 심리는 언제고 똑같은 성싶다. 땀나는 뇌(腦)가 팬티에 그려진 합격기원용 상품이 나왔다 한다. 뇌에 땀나도록 공부하라? 그토록 치열하게 살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