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자신의 이상형이나 분신의 죽음을 곧 자신의 죽음과 동격화한 까닭이다. 이처럼 모델로 삼은 작품 속의 주인공이나 연예인, 처지가 비슷한 또래 학생이 죽으면 따라 죽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한다.
"엄마, 나 살기가 귀찮아요." 초등학교 2년생이 쓴 11월 9일자 일기의 서두다. 아이들 11명이 쓰고 엄마들이 엮은 일기 모음 '나는 즐겁게 럴럴럴 학교에 갔다'에 나온다. 별다른 윤문 과정이나 여과 없이 책으로 만들어선지 진솔하다. 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연극, 학원, 미술, 다 귀찮아요. 재미도 없는데 재미있다고 거짓말로 말했어요. 말 대신 일기에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해요. 나 이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돈 쓰고 싶을 때 쓰고 비밀도 다 털어내고 싶어요. 선생님이 우리를 지도할 때 개미 눈알 만큼도 눈길을 주지 않아요.
그러나 일기 끝에 달아놓은 선생님의 '토(吐)'에선 사랑이 감지된다. 일기장에서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편지를 읽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22방울이나 흘렸다는 사연도 나온다. 속셈학원, 영어학원 등을 다니느라 찌들려 자살한 초등학생도 이런 소통 과정이 풍부했던들 아까운 생명을 건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대부분의 자살은 사람 탓이다. 괜스레 그냥 죽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이든 우츄프라카치아든,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없으면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일지라도 허황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로라 슐레징어가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일곱 가지 방법.'(황금가지․공경희 역)에서 강조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관심이었다. 아이를 망치고 싶으면 놀이방에 맡기고 나가서 일하라(두번째), 아빠의 존재를 무시하라(세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가 아이들에게 구속되지 마라(일곱번째).
그리고 잊지 말자. 자살은 전염된다. 베르테르 효과다. 어쨌거나 이 글의 목적은 베르테르 효과를 막으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멋들어진 말처럼, 살아야 하고 창조하여야 하기에, 눈물을 흘릴수록 더 살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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