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은 12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군을 무찔렀다.” 자민련 의원 만찬에서 총재인 김종필이 든 비유인데, 그는 또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하면 죽는다)”의 결의와 “바람, 감정, 관념에 휩쓸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12척과 130척.
명량 대첩, 단 12척으로 적장 마다시를 꺾고 적선 31척을 깨부숴 130여척을 거느린 적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해전을 일컬음이다. 아마도 자민련(15석)․한나라당(136석) 의석수가 해전 당시 조선․일본의 전함수와 엇비슷함을 의식한 발언인가 보았다. 진실로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염(染)하고 싶었을 이순신.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던 김종필도 빈약한 군세를 한탄하고 있지나 않을지. 바로 이렇게.
‘○○, ○○쪽에는 적에게 보여줄 아무런 군세가 없구나. 나는 늘 그쪽이 추웠고 시렸으며 적에게 감지될 내 빈곤이 두렵다.’
단순히 숫자놀음이지만, 어느 편에서는 귀가 뜨일 대목이 있다. 송여종이 물에 뜬 15명의 적병을 갈고리로 건져 올려서 머리를 잘라 왔다는 구절. 장군은 묻는다.
열다섯이냐?
정치의 ‘정(政)’자도 모르면서 감히 김종필을 읽으려 한다. ‘적의 인후에 바싹 다가갈 수 없으면서도, 어쨌든 적에게 가까이 가야 하는 답답함’ 같은 것, ‘그 빈 공간과 빈 시간 앞에서 허리에 매달린 칼의 허망’을 견딜 수 없던 이순신과 유사한 감정이겠다는 것.
“나 죽지 않아, 안 죽어.” 듣기로 ‘충청도의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그가 던진 말이라 한다. 지금 불쑥 보아란 듯이 이순신처럼 말하면 명언록에라도 오르리라.
―오래잖아 전쟁은 끝날 거여. 된장이 익으면 너희들이나 나눠 먹어라.
맞다. 일단 그으면 돌이키지 못하는 칼. 사람의 말도 그 속성을 지녔다. 누구든 예외가 아니다. 그에게 무슨 할 일이 남았는지, 국민에게 또 그에게도 탁월한 선택이 무엇일지 알지 못한다.
다만 저 문학상의 평을 패러디해서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는 한국 정치계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을 안겨줄 수는 없는지. 그가 언급한 시심(詩心)이 아니라 검심(劍心)이라도 일기 전에.
마른 옥수수잎이 부스스 서걱인다. 꼭 소설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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