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인을 캐자면 보편 타당한 교육학적인 분석도 있겠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교육외적인 분석도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상들을 너무 쉽고 빨리 얻으려고 덤비는 세태 탓으로 돌리고자 한다. 아르바이트 학생을 쓰더라도 상전 모시듯 하지 않으면 언제 떠날지 모른다.
참을성 없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축전지를 만들기까지 2만 번 이상 실패하고도 그 2만 가지 방법이 축전지를 만드는데 부적합함을 발견했으므로 이미 성공이라는 에디슨의 일화가 그것이다.
창조적 실패라는 말이 있다. 야구왕 베이비 루스는 714개의 홈런을 치기까지 1,330번이나 삼진 아웃을 당했다. ‘파산한 닷컴회사를 위한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어느 실패한 사업가가 만든 이 웹사이트에 따르면 1,000개의 사업계획서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은 6개에 불과하다. 또, 투자를 받은 회사에서 60%는 파산하며 40%는 5년 안에 망한다는 메시지로 시작되고 있다.
굳이 이렇게 실패를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무슨 일만 터지면 대통령부터 나서서 ‘다시는……’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지만 항상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패러다임으로 주목받았던 위험사회론이 다시 상기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Ulrich Beck)는 현대 산업사회를 각종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위험사회라고 규정했다. 재작년 일본 정부의 한 간담회에서는 실패학(失敗學)을 만들자는 색다른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고나 실패, 시행착오 사례를 덮어두지 말고 데이터베이스화해 사회 전체가 공유하자는 시도였다.
아직도 우리는 화려한 성공 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실적주의만을 찬양하고 있다. 박세리가 골프대회에서 아깝게 2타 차로 2위에 그치자 골프장 하나 덜 짓게 됐다며 쾌재를 부른 환경운동가가 있을 수 있다. 지금도 보라. 급조한 건강보험과 의약분업은 명명백백한 실패작인데도 이를 예의 분석해 해결하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찾아 보기 힘들다. 실패가 또 다른 실패를 부르는 이유는 그 원인을 찾지 않고 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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