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롤이라고 하던가, 밥을 밖으로 민 누드김밥, 혹은 퓨전 중국음식점의 코스요리, 퓨전 일식집에서 맛보는 일본식 빈대떡 오코노미야키도 이것이다. 어느덧 퓨전은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코드가 됐다. 호서대 김한복 교수(생명과학과)가 마이신처럼 만들었다는 청국장 캡슐 ‘청국’도 퓨전이라 할 수 있다.
곧 서로 이질적인 요소가 섞여 새 정체성을 획득하면 퓨전이 되는 것이다. 혼비사전에는 퓨전(fusion)을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만든) ‘융해물, 합동체’로 풀어 놓았다. 비교한다면 ‘크로스오버’(crossover)는 서로 다른 장르가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결합한 것이다.
경제에 있어서도 다른 기술간, 산업간 결합하는 휴전경제를 지향한다. 음악도 그러한데, 클래식과 대중음악 혹은 국악과 서양악기 사이에 경계 허물기가 시도되고 있다. 퓨전음악이라면 재즈와 록이 혼합된 형태를 말한다. 따지고 들면 록음악도 진작에 퓨전이었다. 리듬 앤 블루스와 컨트리 앤 웨스턴 사이의 잡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가져간 국수와 남미에서 건너온 토마토가 만나서 이탈리아식으로 조리된 스파게티와도 같다.
자연계를 둘러봐도 잡종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다. 현재는 유전공학과 사이버네틱스가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의 잡종을 잉태하는 중이다. 미국 대통령이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조건부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 그 모태가 되는 유전자 해독도 컴퓨터가 가미된 퓨전경제의 영향일 것이다.
퓨전은 곧 창조적 진화다. 혼종이나 잡종을 순수하지 못한 것, 흑도 백도 아닌 회색분자로 비하하는 때는 지났으니, 이럴 때 박쥐는 날짐승과 길짐승이 싸울 때 양자를 소통시키는 탁월한 중재자로서 우뚝하다. 퓨전시대의 박쥐는 현실에 적합한 전통을 만들어가려는 잡종 지향적 태도, 전통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별종 지향적 형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자신의 칸 안에만 가두지 않는 학제간(學際間․interdisciplinary) 연구에서 새 학문이 태동한다. 짬뽕식 신사고는 이 지구촌과 사이버 공동체 건설의 뼈대가 된다. 우리 두뇌도 거듭거듭 퓨전, 크로스오버, 장르파괴(탈장르화)로 버전을 갱신해야만 한다.
잡종의식에 의해 인류사는 이만큼 풍성해졌다. 여기, 퓨전을 생존전략으로 보태고자 한다. 자, 그러면 섞일 것인가, 섞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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