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산 마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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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산 마루타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저 앞에 보이는 이 학교 건물은 당시 제731부대 본부 건물 그대로입니다. 약간 수리해서 그대로 쓰고 있지요.” 정현웅의 소설 ‘마루타의 칼’에서 박 기자가 홍창민 기자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마루타(丸太)’는 껍질 벗겨진 통나무를 의미한다.

작가가 묘사한 731부대 전경을 좀더 들여다보자.
‘일본 관동군 제731부대 죄증 진열관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진열관은 고등학교 한쪽을 막아서 차려 놓은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세 곳으로 나뉘어서 각종 기구가 진열되어 있고, 벽에는 당시의 사진 자료들이 확대되어 있었다.…… 비교적 살이 찌고 말쑥한 모습의 피해자 사진도 있었다. 사진 밑 설명의 한 글에는 실험당하기 전에 잘 먹여서 살을 찌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관동군 731부대. 일본군의 세균전 부대였다. 한국인, 중국인 등을 대상으로 페스트와 유행성출혈열 등 각종 세균의 생체실험을 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원심분리기 사용, 밀폐된 방안의 공기 빼기 등 입으로 형언할 수 없는 실험들이 자행됐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생체실험 대상자인 ‘마루타’로 이용된 사실이 기록과 사진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흑룡강인민출판사가 간행한 ‘일군 731부대 죄악사’(한효, 신배림 공저)에도 이 마루타 수용소인 특별감옥에 수감된 사람 중에 “조선인도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날의 마루타는 30살쯤 된 금발의 러시아 여인과 3살 난 그의 딸이었다. (중략) 이때 가스가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인은 딸의 고개를 바닥에 밀어붙이고 작은 체구를 한껏 벌려 감싸는 등 청산가스의 마수로부터 딸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소설이 아니다. 유리방 밖에서 모녀 마루타에 대한 독가스 실험을 지켜본 실제 731부대원의 증언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부대 시설에 대해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그곳은 원자폭탄이 처음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돔,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이은 세 번째 2차대전 관련 유적이 될 것이다.

아산 영인산 휴양림에 마루타 영화 ‘푸시케’ 세트장과 마루타 박물관이 들어서 서울의 한 기업인이 수집한 생체해부대, 고문틀 등 1000여점의 마루타 유물이 전시된다고 한다. 박물관 예정 부지에서는 역사교과서 왜곡 규탄대회 및 731부대 유물 기증식을 갖기로 했다. 제대로 추진되어 이곳이 중국 현지 731부대와 함께 인류의 잔혹성과 반문명성을 널리 알리고 경계하는 산 역사 교육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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