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마케도니아 등 분쟁 지역 작가들이 고즈넉한 밤 카페에서 작품 낭송회를 하는 걸 보고 싶은 인상을 받았었다. 분단국 한국을 대표한 황석영이 전해 준, 역시 그 자리에 참석한 한스의 새 소설 얘기는 감명 깊다. 르완다 인종청소 현장에 있던 한스는 아름다운 흑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무수히 강간당했다”고, “그래서 당신과 잘 수 없다”고. “모든 섹스가 내겐 폭력 그 자체”이므로. 저들에게도 시가 필요하다.
플라톤은 대중 앞에서 작품을 읊는 시인을 ‘무당 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리스인들은 광장에서 철학을 논했고 서로 시를 읊조리며 인생을 구가했다. 톨스토이,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로 대변되는 저 찬란한 러시아 문학사도 낭송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에서는 신간이 나오면 입장권을 사서 책을 ‘들으러’ 간다. 지금도 도시 곳곳 관공서나 성당의 ‘낭송회’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국내에서도 ‘문예부흥을 위한 소설 낭송회’와 김선주 소설집 ‘제로섬 게임’ 낭송회가 열렸다. 김용택, 정호승 시인과 안치환 등 가수들은 시와 음악이 어울린 ‘낭송 연희’를 매달 펼치며, 라이브 무대에서 배우가 소설을 읽는 텍스트 퍼포먼스 형식의 라이브 소설이 시도되고 있다. 좋은 현상들이다.
주부님들도 연속극 얘기도 좋지만 옹기종기 둘러 앉아 시를 낭송한다면 얼마나 예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구나 우리는 한 잔 술에 시조창을 주고받던 멋진 전통을 이어받았다. 딸아이와 ‘해리포터’ 시리즈로 번갈아 읽어 주기를 해서 얻은 나 개인의 기쁨을 귀띔해 주고도 싶다.
문인협회 주최로 열린 시 낭송 축제에 다녀왔다. 시인은 ‘구절초’ 같고 ‘원시림 푸른 가슴’ 같은 시들을 낳았고 독자(청중)는 그 시를 가슴에 담아 능히 키울 것으로 믿는다.
때마침 윗사정거리에서 송학사까지가 ‘낙엽의 거리’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 참에 시와 사색이 있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보자.
영화 ‘물랑루즈’에서도 고혹적인 뮤지컬 가수 샤틴(니콜 키드만 분)을 향한 작가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 분)의 가슴 떨리는 시 낭송 장면이 나온다. 사랑이 안 풀리거나 메말라진 연인이나 부부들은 영화를 놓쳤더라도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으니 꼭 함께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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