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이나 무덤을 봤을 때, 가령 우리가 왕조의 흥망에 대한 의문을 풀고 나면 보다 허무해진다. 영화 ‘신라의 달밤’의 배경이 된 경주는 신라 말기 사치와 퇴폐로 도저히 환부를 도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저잣거리는 주야를 불문, 노래가 넘쳐났고 질탕한 유락(遊樂)에는 위아래가 없었다. 그 구체적 실상과 징후가 처용 아내의 치정을 통해 포착된다. 현전하는 신라 최후의 향가인 처용가를 현대문으로 옮겨 적는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깊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내 아내) 것이지마는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은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그럼, 처용이 용왕의 아들이며 외간 남자는 역신(疫神)이라는 둥, 그 뒤 울산 앞바다 처용암과 문앞에 부적을 붙인 풍습이 생겼다는 둥의 해석은 멀리 하고, 오로지 인간의 관점에서만 우리라면 아내의(또는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면 태연자약 노래나 부르고 있겠는가. 아슬아슬한 쾌락을 들킨 외간 남자를 감화시켜 무릎 꿇린 사건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정은 다르나 오시마 나기사의 ‘열정의 제국’이 연상된다. 먼저 개인들의 치정을 통해 제국의 엄숙주의에 통렬하게 메스를 들이대는 데서 그렇다. 인력거꾼 아내가 젊은 남자와 불륜에 빠져 남편을 죽이고 우물에 처넣은 것도 같은 카테고리이다. 패륜아인 역신, 탕녀인 처용 아내의 교합 또한 당대의 타락성을 증언하며, 끝내 왕조의 멸망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간에는 끔찍한 사건이 줄을 잇는다. 아내를 쇠사슬로 묶어 놓고 한쪽 다리를 전기톱으로 절단한 잔혹한 남편이 없나, 바람 핀 남편의 심벌을 잘라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린 비정한 아내가 없나.
때로는 희망 없는 인내보다는 결별하는 쪽이 수월할 수도 있다. 이혼율이 일부 선진국을 상회한 현재와 처용의 시대, 어느 쪽이 더 타락의 도가 심할까? 누구든지 배우자의 불륜 앞에서 노래를 읊조린다면 정신이 나갔든지 보살 또는 입신의 경지이든지 할 것이다. 그러면 처용처럼 전설의 영웅으로 화할지 모른다. 어떻든 극도의 흥분만은 잠재우고 나서 이혼을 하든 노래를 하든 하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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