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 컨트리, 가스펠 등 3대 장르에서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진기록도 그런 추모의 정에 힘입는 바 크다. 어느 곳의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에선 17인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참으로 옛날 이발소 벽에다 걸렸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만고의 명언이다. 허균의 여동생인 난설헌 허초희는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사후에 나온 213수의 시로 조선조의 여성 시인이 됐다. 둘 다 37세로 죽은 프랑스 시인 랭보와 우리의 천재 이상, 35세의 모차르트…….
그리고 브루스 리로 불렸던 홍콩의 이소룡이 있다. 할리우드가 밀려오고 성룡의 코믹 액션이 밀려오기 전까지 그가 주연한 ‘정무문’, ‘용쟁호투’, ‘당산대형’ 등 무협영화는 실로 우리를 열광시켰다. 그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이준구 사범이 같은 한국인이란 게 못내 자랑스러웠다. 청소년기에 나는 그가 입던 옷을 맞춰 입고 그의 무술을 흉내냈으며 그처럼 복근에 왕(王) 자가 새겨지는 운동을 하려고 용을 썼다. 쌍절곤을 돌리다 스스로 뒤통수는 얼마나 맞았던가.
진작에 유하는 산문집 ‘이소룡세대에 바친다’를 냈으며 은희경은 ‘마이너리그’에서 긴급조치, 월남패망, 교련실기대회, 임예진, 휴거 등과 함께 당대의 우상으로 이소룡을 열거했다. 아마 ‘부활 이소룡’이라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아는 젊은 친구들이라면 구태여 아버지나 삼촌에게 묻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는 한국이 무대인 ‘사망유희’를 준비하다가 33세에 급사했다. 그런 이소룡의 부활 소식에 우선 반갑다. 신씨네가 만든다는 ‘드래곤 워리어’는 죽은 배우를 주연으로 쓴 최초의 영화라고 세계 영화사에 한 줄 남을 것 같다.
잘만 하면 이소룡이 한국배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방식은 배우를 캐스팅해 찍은 뒤 몸동작(모션 캡처)과 얼굴 표정을 재현(페이셜 트래킹)하는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맞상대인 실제 연기자의 모습을 합성하는 데 그 마무리는 할리우드에서 한다.
모두 6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2004년에나 개봉된다니 차분히 기다려야겠다. 무협이 문화 전면에 끼어든 작금의 추세를 빌려 성공을 점치고 싶다. 생전에 ‘두루미의 둥지'라고 아끼던 이소룡 저택이 ’러브호텔‘로 변했다 해서 쓰린 가슴이 조금은 달래진다. 그나저나 이소룡 흉내내기를 멈추지 않을 걸 잘못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도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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