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적의 일부로 강우 주술이 아직 남아 있다. 예컨대 러시아 일부 지방에서는 사제(司祭) 입회하에 여자들이 옷을 입은 채로 동네방네 여럿이 보는 앞에서 공개 목욕을 한다. 또, 여자들이 전라(全裸)의 몸으로 쟁기 끌어 밭을 가는 기괴한 주술로 비를 부르는 인도의 풍습도 이채롭다. 주술보다 확실한 효과를 위해 남자는 절대로 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자고이래로 가뭄이 들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집권자의 부덕으로 여길 만큼 중대 사안이었다. 심하게는 왕을 갈아치우고 죽이기까지 했다. 가뭄이 들자 밤하늘만 쳐다보고 비를 애타게 기다리다 새벽녘 빗소리를 듣고서야 잠들었다는 보릿고개 시절 박 대통령의 일화는 웬만큼 귀에 익었으리라.
지난번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면 비과학적이라고 할까 봐 꺼리던 대통령이 생각난다. 강우 예보가 나간 후 기우제를 지내고서 효험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옛어른들 말씀대로 과학이다, 미신이다를 떠나 정성이고 정신인 것 같다.
조선 태종 말년에 어찌나 가뭄이 심했던지 병세가 위중한 임금도 자나깨나 그 걱정뿐이었다. 오죽하면 임종에 이르러 “내가 죽으면 상제(上帝)에게 가서 이 백성을 위해 비를 내려 주십사 하겠노라”고 유언을 했을까. 드디어 음력 5월 10일, 태종이 운명하자 홀연히 구름이 모여들어 몇날 며칠을 비가 내렸다. 이날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부른 내력이다.
그 후로도 매년 이날만 되면 비 소식이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농민들은 비를 기다리다 지치면 단념하고 차라리 태종우를 학수고대했다. 최후의 한시 대가인 최영년까지 읊었던 임금의 우국지심은 어쨌건 숭고하다.
왕의 말씀 비를 주마시더니
밝은 묏부리 우레소리 울려온다
백성들은 모두 다 선왕의 주심을 기뻐하고
오백년 뒤 지금까지 해마다 오네
그런데 오면 안되는 비가 있으니 복날 내리는 비에 눈물을 비처럼 뚝뚝 흘리는 보은, 청산의 대추골 처녀들이 그들이다. 삼복우(三伏雨)로 대추농사 망치면 시집가기 글렀다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고 전해 온다.
음력 5월 10일, 태종우의 날이다. 여기에다 장마까지 겹쳐 제법 많은 비가 예상되고 있다. 이날 이후 임금의 마음자리를 지금 백성도 알아차렸으니 제발덕분에 적당히 와 줬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비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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