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왕이 바둑으로 날을 지샌다는 둥 수시로 거짓말을 보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마 후 고구려 정황을 살피고 온다며 떠난 도림의 보고에 따라 장수왕은 군사를 일으켰다.
“고구려 왕과 바둑 시합을 벌이십시오. 제가 가르쳐 주신 대로만 두시면 문제 없습니다.”
도림의 거짓 편지에 놀아나 바둑에 정신팔린 개로왕은 질풍같이 밀어닥친 고구려 군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붙들려 아차성 아래서 목이 잘렸다. 그때 한강 유역의 기름진 땅도 몽땅 빼앗겼음은 물론이다.
바둑만 두다 나라를 망친 극단적인 경우다. 김종필이 바둑대회에서 언급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바로 이럴 때다. 매사 지나치면 모자람만 같지 못하다.
근래의 바둑 열기는 인터넷 세상에도 그 접속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국회에선 ‘바둑, 올림픽으로 가는 길 가능한가’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바둑의 체육 편입 및 올림픽 상륙의 당위성이 거론되는 마당이다. 더욱이 바둑은 건망증을 막는, 매우 유용한 두뇌 스포츠다.
정치인 가운데 바둑 애호가가 많다. 국회의원 권한대행을 지낸 원로 정치인 민관식은 팔순 노구에도 코트에 서는 노익장(老益壯)이다. 오로지 평생 바둑을 두기 위해서란다. 그의 호를 딴 테니스대회가 지금도 열린다.
김종필도 바둑을 무척 즐긴다. 그의 아호를 넣은 ‘운정(雲庭)배 바둑대회’는 대회 자체보다 김종필・이인제 회동에 더 무게가 실렸다. 기대했던 수담(手談)은 불발인 대신 걸쭉한 입담만 남겼다. “8급이 1급짜리 훈수하더라.”(김종필・아마 1급), “실력이 낮을수록 훈수를 못 참는다.”(한화갑・한국기원 총재), “이세돌 같은 젊은 아이에게 못 당하는 건 집중력 탓이다.”(이인제・아마 5단)
특히 김종필씨의, 도자기보다 어려운 ‘사람 감정(鑑定)론’, 면도사(생명과 직결되므로)와 관상인(배반자를 미리 가리려고)을 대동한 서양의 왕 이야기는 압권이었다.
그런데 오찬 중 김・이 두 사람이 한마디 말을 건네지 않은 것, 그리고 자리 배치(김종필―한화갑―이인제)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담긴 함의(含意)는 뭔지, 단순히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풀이인지, 나 같은 하수가 알 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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