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 무궁화는 7위에 올라있다. 조선시대엔 매화, 모란, 국화가 사랑을 듬뿍 받았다. ‘화목9등품제’라 하여 꽃과 나무를 벼슬처럼 아홉 품계로 나눈 이는 세조 때 화가 강희안이었다.
높은 풍취와 뛰어난 운치를 취한 1등품(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과 부귀영화를 취한 2등품(모란, 작약, 파초)은 여전히 좋아하는 꽃들이다. 3등품은 은은한 기품을 취했으며(치자, 동백, 종려) 4등품도 이와 같다. 5등품은 번화함을(장미), 6등품은 5등품의 격을 따랐다(진달래). 또 7등품엔 단풍, 8등품엔 무궁화를 필두로 봉선화, 옥잠화, 석죽, 두충을 넣었다. 마지막 9등품은 여러 꽃과 나무의 장점들을 취했다.
명색이 나라꽃인 무궁화가 8등품이라고 실망할 건 없다. 단군과 함께 비로소 이땅에 나타났고 우리 강토를 근역(槿域)이라 불리게 한 내력있는 꽃이 다름아닌 무궁화다. 일본 돗토리현의 현청 소재지인 돗토리시에 가면 그곳 명소인 사구(모래언덕)로 가는 길목이나 마을 여기저기에 무궁화가 허옇게 피어 있다. 일본땅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인 것이다.
핵사찰 문제로 이목이 쏠린 영변에 많이 핀, 스무 살 김소월이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리라던 진달래는 김일성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줄곧 북한의 나라꽃이었다. 1991년의 일이다. 아름답고 향기가 짙어 꽃중의 왕이라는 절대자의 찬사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졸지에 나라꽃이 된 목란(木蘭)은 꽃이름마저 김일성이 바꿔 붙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함박꽃나무라 부른다.
목란, 진달래, 김정일화와 나란히 4대 상징꽃의 하나인 김일성화는 인도네시아에서 선물한 난과 식물이었다. 9월에 피는 이 꽃을 김일성의 생일이 든 4월로 개화기를 바꾼 이는 의용군 출신의 원예가로 이산가족 방문 때 남한을 다녀간 심종만이다. 얼마 전에 3차 이산가족 상봉단에 의해 서울에서 첫선을 보인 김정일화는 남미 원산의 베고니아 뿌리로 오랜 연구 끝에 개량한 것이다.
남북한의 나라꽃인 무궁화와 목란을 경의선 철길 주변에 심는 방안을 우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지대로라면 남북간 화해와 평화를 상징할 수도 있겠다. 어느 경우라도 꽃에 정치색을 입히지 말도록 피차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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