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지 드라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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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지 드라마인지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아침에 신문에 끼워오는 광고 전단지엔 시장을 지키자며 탤런트 김을동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녀인 그녀는 김두한의 첫째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둘째부인 소생 장남 김경민씨는 드라마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아버님과 관련된 대부분이 왜곡 전달되고 있다”는 것. 또 김두한의 친구로 ‘장군의 아들’에 비중 있게 나온 김동회 할아버지는 극중에 자신이 일절 언급되지 않은 걸 섭섭해했다.

이 모두는 거짓말 같은 진짜보다 진짜 같은 거짓말을 더 믿는 사람들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사극(史劇) 제작진들은 여간해선 그림이 좋은 거리를 찾기가 힘들다고 푸념한다. 전통을 재현한답시고 어색하게 기와를 머리에 얹고 있는 콘크리트 건축물, 관광이라는 허울 아래 어딜 가나 심산유곡까지 잘 닦여진 아스팔트 포장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마뜩찮은 것이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낸다 하듯이 드라마를 정사(正史)보다 신뢰하다 보니 역사상 인물보다는 탤런트 유동근의 이미지 속에서 태종 이방원을 찾으려 했다.

후백제의 옛도읍인 전주(완산주) 경기전(慶基殿)은 ‘용의 눈물’ 촬영 현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곳이 역사의 현장, 그러니까 조선 태조의 영정 봉안처로서가 아니라 20세기말에 사극에서 재현된 태종의 왕위 전승 현장으로 더 알려진 건 아이러니하다. 도심에 가까운 이점도 있겠지만 도시민의 안식처로 자리잡아 그나마 다행이다. 또, 알다시피 용인민속촌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장소 협찬 장소다. 그러나 바로 담 너머 놀이동산에서 들려 오는 시끌벅적한 배경음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점차 비정상이 정상을 몰아내고 정상이 되는 사회. 국토를 동강내서 호젓한 흙길을 파헤치고 값비싼 돌계단을 쌓아도 으레 그러려니 한다. 청자에서는 선(線), 백자에서는 색(色)만 보라고 배우고 가르친 우리들이다. 그 결과는 그것을 뺀 다른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문화적 청맹(靑盲)을 만들었다.

논산 견훤왕릉의 국가문화재 지정도 좋은 일이나, 문경새재나 충주호처럼 솔직히 드라마 ‘태조 왕건’의 영향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극이 각광을 받자 덩달아 학술 발표를 하고 고증하는 것은 어쨌든 아쉬움이다.

기왕 길 하나, 계단 하나 만들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전에는 우리 것이었으나 지금 사라진 것, 사라지려는 것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돈 냄새만 물씬 풍기는 소림사 무술영화 세트처럼 만들지는 말자는 거다. 전통은 가끔 굴레가 될 뿐 아니라 과거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친다.

그리고 드라마는 드라마다. 김두한의 아들 김씨는 방송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싶어도 국민적 인기 프로여서 참는다고 했다. 게다가 발기할 의사가 없는데도 어떤 신당의 발기인으로 이름이 올라 그를 난처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대가로 김두한의 실제 가족들은 우리가 잘 모르는 스트레스에 잔뜩 시달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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