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계필담(夢溪筆談) 잡지편에는 교정의 어려움이 기막히게 잘 나타나 있다. 교서여소진 일면소일면생(敎書如掃塵 一面掃一面生). 책을 교정하는 일은(교서) 먼지를 청소하는 일과 같아서(여소진) 한쪽을 쓸면(일면소) 다른 한쪽에 먼지가 앉는다(일면생).
흥왕사 교장도감에서 펴낸 속장본엔 오늘날 ‘교열’에 해당하는 두세 명의 교감자가 적혀 있다. 교서각을 따로 두고 출판을 도맡은 조선조에도 책을 만들 때 교정을 맡은 관리의 관등성명을 표기하였다. 초쇄하자마자 오・탈자를 바로잡은 다음 오케이 사인에 해당하는 ‘교정’인을 찍은 세심함이 엿보인다.
사서삼경의 첫머리에 들어가는 시경(42명)이나 논어,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에도 여러 명 교열자가 있었지만 오자가 있었다. 요새는 국선에 입선한 서예 작품에서 더러 오자가 드러나 수상이 취소되기도 한다. 글의 향기는 고사하고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쓴 탓이다. 역사상 으뜸가는 필화로는 요미우리신문의 ‘무지무능(無知無能)한 노국황제(露國皇帝)’ 사건을 들 수 있다. 전(全)을 무(無) 자의 흘림으로 잘못 본 문선공의 실수가 무식하고 무능한 러시아 황제를 만들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일본측은 서둘러 호외까지 찍어 외교 분쟁의 불씨를 껐음은 물론이다.
관심을 끄는 오자가 또 생겼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판에 김영삼 전 대통령 회고록까지 나와 치고 받는 꼴이, 아닌 말로 애들 교육에도 안 좋을 것 같다. 문제는 그게 아니고, 서점에 깔린 이 회고록을 곧바로 리콜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회고록 상권 232쪽 ‘아내와 함께 성탄절 기념 미사를 보는 모습’의 사진설명 때문이었는데, ‘예배’가 그만 가톨릭의 ‘미사’로 잘못 나와 버렸다. YS가 직접 발견했다는 이 오자에 대해 한 측근은 “그만큼 완벽한 회고록을 내겠다는 의지”라고 자화자찬하지만, 더구나 개신교 장로인 YS로서는 적잖이 떨떨했을 거다.
그러고 보면 오자 한 자 없다는 (사실은, ‘거의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지만) 팔만대장경은 한국의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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