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과 눈부심

  • 오피니언
  • 문화칼럼

푸름과 눈부심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콜라색도 노랗게 바뀌는 시대에 파랑을 봄의 빛, 젊음의 색깔로만 묶어두기엔 너무 아깝다. 오광대에서 봄을 맡은 것도 청제(靑帝)장군이었다. ‘청춘예찬’의 민태원이나 양나라 원제가 아니더라도 푸름은 봄이며 청춘이니 굳이 누가 약동이라고, 활력이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체득하는 게 아닐까?

파랑은 동쪽이며 해돋이를 상징한다. 동방의 나라, 코리아를 청구(靑丘)라고 한 연유가 이것이다. 또, 청신호, 푸른 신호등의 파랑은 출발을 암시한다. 가끔 녹색 신호등이다, 푸른 신호등이다 해서 옥신각신하는 건 한국 사람이라는 증거다. ‘파랑’이나 ‘푸르다’는 풀(草)에서 나왔다. 한자로 토를 달아도 ‘푸를 록(綠)’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파랑은 영어의 그린이나 블루, 아니 영어를 포함한 서양 언어의 청색과 녹색이 모두 포함된다.

미술시간에 배운 색상환은 젖혀두자. 물감의 3원색은 빨강, 녹색, 파랑이다. 파랑 물감에 노랑 물감을 섞어야 녹색 물감이 된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어야 한다. 녹수청산(綠水靑山)은 푸른 물과 푸른 산이다. 청이 녹이고 녹이 청이었다. 산도 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다. 파랑 풍선을 불어 연해지면 하늘색이니, 하늘색도 별것 아니다. 제관들이 입던 남빛 옷을 남삼이 아니라 청삼이라 했다.

한민족에게는 초록, 남색, 감색, 하늘색이 온통 파랑(靑)이었다. ‘파르께하다, 푸르께하다, 파르대대하다, 푸르뎅뎅하다, 파르스레하다, 파르스름하다, 파르족족하다, 파릇파릇하다 등 파랑을 나타내는 단어는 수백 개를 만들 수도 있다.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어느 족속에겐 똑같은 고깃배가 가뭇없이 사라졌을 때, 머다랗게 돛만 보일 때, 뭍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 때의 배 이름이 각가지다. 에스키모에겐 내리는 눈 다르고, 쌓이는 눈 다르며, 얼려서 얼음집을 지을 때 쓰는 눈이 각각 다르다. 한국인이 그들을 속이고 간 날(이런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내리던 눈도 다를 것이다.

우리는 풀과 친한 민족이다. 높은 봉우리에 구름 걷히니 ‘푸른’ 꼭대기 드러난다고 읊은 이는 서화담이었다. 마당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을, 흙에서 자란 지용은 ‘파아란’ 하늘빛을 그렸다.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짓도 않는다.’ 이상의 ‘권태’는 이상하게 청과 녹을 구분한다.

봄은 가더라도 여름빛은 날로 짙푸르니 좋다. 새색시처럼 녹의홍상 곱게 차린 봄날이 가버렸다고 한탄할 것 없다. 여름도, 가을도 마찬가지이다. 청년에겐 청운의 꿈이, 청년이 아니더라도 파랑은 기쁨과 소생, 그리고 대망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