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緣)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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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緣)을 느낀다”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지난날 일제는 한반도 곳곳의 왕릉과 성, 건축과 석조물 등 문화 유적들을 약탈해갔다. 그 상당수는 일본의 국보나 문화재로 탈바꿈하여 일본 땅에 있다. 통감 소네가 “공공연히 선물하는 것으로 한다면 아무런 지장도 없다”고 했을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보나마나 한국사 역시 정상적일 리 만무했다. 광개토왕비 자구 변조는 다 아는 일이다.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삼국유사’의 첫머리 단군기사 중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변조했다고도 한다. 육당 최남선도 이 논거를 따른다. 단, 환인은 이미 불교적 명칭이라는 등 이설도 만만치 않다.

일본 어용학자들의 한국사 연구는 오직 신민지 정책 수립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띠었다. 주체성은 아예 무시되거나 왜곡되었다. 스에마쓰(未松保和)의 ‘조선사의 길잡이’만 봐도 ‘동국통감’이나 ‘동사강목’에서 요긴한 것만 취하는 형식이었다. 미시나(三品彰英)의 ‘조선사개설’은 반도가 일본 품에 안김으로써 오랜 가난과 슬픔의 반도사적인 것을 버릴 때라고 적는다. 자연히 사회・경제사적 이해는 뒷전이고 ‘사대의 나라’니 하는 타령일 것은 뻔했다.

1991년 여름이다. 일본 국보인 스타하치망 거울에 새겨진 어떤 글자로 하여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사마(斯麻)’라는 글자의 주인공이 공주에서 찾아낸 지석의 ‘사마’와 동일인, 즉 무령왕이라는 발견 때문이었다. 무령왕이 일본열도의 남제왕에게 내린 신임의 징표였다. 오사카에 가면 구다라역(百濟驛)이 아직 남아 있다. 한때는 왕궁을 백제궁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일 두 나라는 오랜 애증만큼이나 기록된 이상의 교류, 때에 따라 인종교류도 이뤄졌을 것이다. 한국인의 혈액형을 보면 O형 27.89%, A형 32.34%, B형 29.53%, AB형이 10.25%를 차지한다. 적어도 퉁구스, 만주인, 몽고인, 일본인의 비율과 유사점이 있다.

언필칭 우리 스스로 단일민족이라 하지만, 빗살무늬토기를 썼던 신석기의 고아시아 인이나 고시베리아 인들, 민무늬토기의 주인공들, 만주・중국계통, 남으로 동남아와 화남지역, 폴리네시아 인들과의 유전적 교류가 추정된다. ‘연오랑과 세오녀’ 편에 바위(고기로 추정)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 왕이 된 고기잡이 신라인의 기사를 담고 있음을 본다. 8세기의 ‘속일본기’에는 “황태후의 조부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純陀) 태자”이며 간무(桓武) 천황도 조서에서 그리 말했다고 적혀 있다.

아키히토 일본천황이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무령왕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한국의 연(緣)을 느낀다”는 뜻밖의 발언을 해 적잖이 파장이 일었다. 구체적으로 역사 인식의 변화인지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망령인지에 대해 속단하기는 이르다. 어떻든 우쭐해할 것도 욕될 것도 없는 역사다. 망언만 하다가 참소리를 하니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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