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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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의 한가운데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간부간부회의 시간에 지나간 6개월을 반추해보았다. 며칠 전 자리를 바꿔 앉은 전임 편집국장은 “천 년같이” 느껴졌을 테고, 솔직히 나는 빠르다는 느낌 이전에 지독히도 긴긴 하루의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이래저래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숨가쁘게 반복된 일상이었다.

이 세상에 시간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하마가 고개를 쳐들어 위험 여부를 판단하는 사이를 ‘순간(瞬間)’으로 쳤던 이집트인들, 아니 묵묵히 서 있는 속리산 청동대불이나 개천을 구르는 하찮은 조약돌이라도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이라도 과거는 바꾸지 못하듯 시간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랑마저 정복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실시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미래적인 가치로 표상되는 세계, 즉 가격은 매초 결정되고 기업들은 제품 생산에 실시간 경쟁을 할 뿐이다. 머잖아 현재의 능력과 업무실적으로 인력시장에 내놓을 때 매겨지는 시가(時價)에 따라 사원의 업무와 능력을 결정하는 시가주의 인사가 연봉제 등 능력주의 인사를 대체하는 흐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해본다.

시간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영생을 꿈꾸다가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예가 있었는가 하면 7월생인 줄리어스 시저는 7월이란 달이름을 자신의 이름에서 딴 율리(July)로 개칭했다. 그가 브루투스에게 살해당한 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신의 생월인 8월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꾼다. 현세의 인류도 유전공학의 발달로 시간의 지배에 재도전하는 듯이 보인다.

우리 뇌속 송과체의 물질대사는 밤낮에 따라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난다. 물리적 시간과는 다른 심리적 시간도 있다. 지루하면 길게 느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체감하는 세월은 가속이 붙는다. 구태여 시간생물학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수술대에 누웠을 때의 3분, 애인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3분이 같을 수가 없는 이치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체의 생리적 주기에 따라 한 달을 바이오리듬처럼 28일 주기로 바꾸자는 주장도 일고 있다. 공전과 자전의 태양 중심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으로 한 달 28일, 1년 13개월 364일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1월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러시아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한 해의 내리막길에 접어든 지금, 버나드 쇼의 말을 재삼 상기한다. 신문기자의 물음에 ‘술병에 술이 반쯤 남았을 때 그것을 보고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기뻐하면 낙천주의자, 반밖에 안 남았다고 탄식하면 염세주의자’라고 대답했다던가.

그렇다.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 상상력, 창의력이야말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시간을 추월해 새로운 가치가 될지도 모른다. 아직 못 넘긴 달력장일랑 서둘러 넘기고 남은 해를 기꺼이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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