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무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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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무게가 있다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삶의 무게가 다르다면 죽음의 무게도 다를까? 사회면의 두 기사(記事)는 해묵은 명제를 반추시킨다. 하나는 밥 많이 먹는다는 시비 끝에 시누이를 죽인 올케 얘기다. 이 무슨, 밥 몰래 먹다 시어머니한테 맞아 죽어 피어났다는 며느리밥풀꽃의 아류인가 싶다. 낮에 집 근처 가게에서 이 꽃과 마주치니 더욱 그랬다.

다른 하나는 강대국민의 죽음은 붕(崩)이고 비강대국민의 죽음은 사(死)인가 하는 문제 제기이다. 한자말이라 어려운데, 죽어서 상승이동하면 승하(昇遐), 등선(登仙), 입적(入籍), 귀진(歸眞)이요 하강이동하면 아귀(餓鬼)되고 축생(畜生)되니 황천(黃泉)이요 구천(九泉)이라더니…….

생각건대 그렇게 비분강개할 것까진 없겠다. 추모의 날을 정해 묵념 좀 드렸다기로서니 억울해할 게 무언가. 그들이 우리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땐 졸속(拙速)이니 고속성장의 허구니 하는 비아냥이 전부였다. 백 번 그렇더라도 남의 불행 앞에 애도나 위로 전문 한 통은커녕 ‘너희 나라는 할 수 없어’라며 우리를 부끄럽게 했던 그 심보가 이제 와서 곱씹으니 괘씸하긴 하다.

요사이 나는 회사 뒤편 어느 침례교회 목사의 말마따나 살아서 먹는 국수 한 그릇의 감격을 맛보려 애쓰는 중이다. 호화로운 상여에 실려가느니 살아서 누더기 입고 볕 쬐는 것만 못하다고들 한다. 각 종교는 ‘죽음 너머의 삶’이라는 형용 모순에 대한 해답을 마련하고 있다. 불교에선 욕계(6), 색계(18), 무색계(4)로 나뉘는 28천(天)을 말하고, 도교쪽은 여기다 8천을 더해 36천이 있는데, 생사(生死) 왕래 없이 영생하는 하늘을 설정한다. 생사는, 슬픈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큰 관심사는 의식(儀式)과 무연한 장례에 있다. 정승 죽은 데는 안 가도 정승집 개가 죽으면 인사 차리는 세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죽을 때도 ‘빽’ 한다고, 절대권력자의 죽음 앞에선 특히 그렇다. 김정일, 그리고 스탈린 사망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흐루시초프, 모택동 사망시 자금성에서 추모 연설을 한 화국봉―그들은 다들 실권을 쥐었다. ‘문턱이 닳는다’는 표현은 수양대군의 쿠데타 성공 뒤에 생겨났지만 초상집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 잘 만난 개는 빵 한 조각 먹더라도 입맛대로 골라 먹고 산책을 즐기는가 하면 클래식을 듣는다. 힘센 나라의 불행은 뭇나라의 불행이 되고, 실력자의 후원의 밤은 늘 성대하며, 그들 가족의 장례식엔 눈도장 찍으려는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가건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생명이 가장 귀하다. 예기치 않은 죽음이 최상이라 했던 몽테뉴, 진의(眞意)가 따로 있고 옛날 결정적으로 나를 수필가로 만들어준 선현의 말이더라도 도저히 수긍 못하겠다. 새벽에 한 샌프란시스코 통신원이 전하길 무슨 큰일을 당할 때마다 현지에서는 미국 국가를 못 부르면 따돌림당하는 분위기란다.
미국 국가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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