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육수에 쓰려고 ‘독서의 샘’에 생수를 뜨러 갔더니 날씨 탓인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장관은 공개리에 수돗물을 마셨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여봐란 듯이 고기를 먹으면 “또 고기에 이상이 있구나”라며 역효과인 나라, 이상한 불신사회…….
예전 같으면 약수터에 가는 여자를 오맞이꾼이라 했다. 물, 비, 도둑, 서방, 매 다섯가지를 맞이할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다.
여름이면 누가 써도 쓰는 단골 메뉴가 밤에 남자들이 사용하는 ‘죽부인(竹夫人)’이다. 한데 시원한 ‘죽서방’은 왜 없었나, 잠자리마저 남녀차별인가 하는 의문을 품음직하다. 마침 고서를 읽다가 ‘죽노(竹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틀림없이 여자들이 안고 자는 ‘대나무사내종’인데, 다른 글에서 써야겠기에 그 전거를 안 밝힌다.
나 같은 속인은 죽부인이 없어도, 대자리를 깔고 모시옷 하나만 걸쳐도 반쯤 신선이 된 듯하다. 얄브스름한 대발 틈새로 언뜻언뜻 좀도둑처럼 처드는 바람에서 애오라지 대나무숲이 느껴진다. 이즈음 시아버지 없는 데서 좀 벗고 싶은 며느리도 있을 테고 다 큰 딸 안 보는데서 트렁크 팬티만 입고 싶은 아버지도 있을 것이다. 더위를 빙자한 노출욕이라면 누가 말리는가. 퇴근할 때면 색조화장에다 대담한 옷으로 갈아입는 직장 여성들에게 복 있을진저!
그 장족의 발전을 이룬 노출 아이템에는 강심장이라도 어쩌지 못한다. 골짜기처럼 움푹 파인 클리비지룩(cleavage는 균열이나 틈, 유방 사이의 오목한 곳)이 그렇고 계곡패션을 위해 노브라나 컵 적은 브래지어가 선호되는 것도 흥미롭다. 엉덩이만 가린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에 T자 팬티, 앞은 멀쩡한데 등이 확 드러난 백리스톱도 나왔다. 어깨와 겨드랑이를 드러낸 홀터넥은 말고삐(홀터)처럼 앞에 달린 끈을 목 뒤에 두르듯 매는 형식이다. 어깨끈 없이 가슴만 가린 튜브톱, 란제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수영복도 제법 인기를 끈다.
어느 정도의 노출이나 자기 과시는 지극히 정상일 것이니, 그 심리는 자기 표현이며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 몸의 부끄러운 데를 가리는 ‘앞가림’의 다른 뜻은 ‘제 앞에 닥친 일을 처리할 능력’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아담과 하와 커플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데를 가린 것도 어엿한 앞가림이었다.
얼마나 적게 가리고도 살 수 있는가를 깨우쳐줘 고맙긴 해도 앞가림에 급급한 옷보다는 솔바람까지 안아들이는 넉넉한 옷이 그리운 계절이다. 감추어진 매력, 그것이 더욱 돋보임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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