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료의 CF―바닷가 절벽 위, 남자가 아련히 먼 데를 바라보고 여자가 먼저 사랑을 표현한다. 사람들은 이를 당당함, 특별히 여자의 당당함이라 일컫는다. 이 말에는, 여자는 당당하면 안 된다거나, 당당함은 여성스러운 미덕이 아니라는 가치관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얼핏 봐서 세상이 ‘여인천하’ 같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도 많다. 그 가장 극명한 곳은 아프간일시 분명하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인 로라 부시가 남편을 대신해 ‘대통령 주례 연설’을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여성들은 아파도 의사에게 갈 수 없다. 소리내어 웃는다고 돌을 맞으며 매니큐어를 칠하면 손톱이 뽑힌다. 그녀가 밝힌 여성 억압 사례들이다. 이쯤이면 시몬 드 보부아르가 아니라도, 여자와 남자를 엄격히 구별하는 시절일수록 여자를 억압하는 방식은 혹독해진다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 ‘여성 공민권의 승인에 대하여’ 팸플릿을 쓴 여성 연극인 마리 올랭프 드 구주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남긴 마지막 외침이다. 좀 궁글려서, 여성해방은 민주주의의 뿌리임을 이 아침 다시 확인한다. 더불어 프랑스 대혁명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여성해방의 신기원임을 깨끗이 인정해야겠다.
숙명과 제도 중 어느 편인지는 모른다. 여성의 속박은 피할 수 없으며 벗어나려면 할수록 더 가혹한 고통을 당한다는 루소는 철저히 ‘숙명’쪽의 손을 들어 준 ‘마초맨’이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목걸이’의 잔느와 르와젤 부인, 지드의 ‘좁은 문’에 나오는 알리사 등이 그 전형이랄 것이다.
이래저래 자주 입줄에 오르내리는 이문열은 ‘선택’에서 “이혼을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하고 간통을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하는가 하면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진실로 걱정스러운 일”이라며 수상스런 목소리로 못박아 그 소설을 쓴 여류들, 또 문학 안팎에서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이 지상에서 인간의 영혼에 가장 순수한 소금으로 남아 있는 존재”라는 메테를링크는 여성 옹호론의 입장이다.
비례대표제의 여성 30% 할당제 보도가 있었다. ‘자는 아내 다시 보자’는 남편이 실제로 있을 법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