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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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문민정부 말기엔 가상소설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아직 기억에 남은 이야기로 ‘불타는 청와대’가 있다. YS의 하룻밤 꿈을 통해 구태의연한 정치행태의 청산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선데 지금 대통령은 이즈음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타래타래 난마같이 얽혀 복잡한 현실정치처럼 꿈의 가닥도 갈래갈래 복잡할까?

매사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라면 세상은 무미건조해진다. 세상사는 계량되고 만져지고 입증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무언가가 있다.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는 거기서 과학의 위대성보다는 놀라운 신(神)의 숨결을 느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꿈의 지시대로 전략을 세운 결과라고 전해진다. 골프선수 잭 니클로스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골프채 쥐는 방법에 대한 꿈을 따랐더니 기량이 몰라보게 향상되었더라는 얘기는 꿈의 활용 가치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오페라의 거장 바그너가 저 유명한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탄생시킨 계기도 그의 꿈이었다. 실제로 바그너는 베젠도크에게 보낸 글에서 “나는 이 작품의 내용을 모두 꿈으로 꾸었다. 사실, 나의 이 빈약한 머리로는 아무리 애써도 이러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스티븐슨 같은 사람은 평소에 아예 꿈꾸는 훈련을 했다. 선과 악의 충동을 공유한 인간의 이중인격을 극명하게 그린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도 꿈의 기억을 더듬어 초고가 완성되었건만, 시원찮다는 부인의 잔소리를 듣고는 홧김에 원고 뭉치를 난로 속에 집어던지고 재집필해 걸작으로 남은 것이다. 장 콕토도 꿈에 아서왕에 대한 연극을 본 덕분에 ‘원탁의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꿈 내용을 글로 쓰곤 하며 “시인은 그 자신의 밤에 지배된다”고 했던 콕토가 부럽기만 하다.

왜 외우는지도 모르고, 우리가 그토록 외우느라 진땀을 뺀 원소주기율표도 멘델러예프가 꿈길에서 완성을 본 것이고, 바빌로니아 반지의 비밀을 꿈속 수도승의 설명으로 풀어낸 역사학자 힐프레히트, 재봉틀을 발명한 호웨, 박물학자 아가시의 물고기 화석 등도 모두가 꿈에서 건져진 성과물들이다.

인체는 잠자는 동안 빠른 속도의 안구운동, 뇌 온도의 상승, 혈류의 빨라짐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하룻밤 4~6회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꿈을 꾼다. 이 주기적인 변화를 없애는 약을 썼더니 실험 대상자들이 일종의 정신 이상인 편집증(偏執症)을 나타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꿈을 꾸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도 답답해선지, 영험 있는 꿈이나 한 자락 꾸어 막힌 정국을 하수구 뚫듯 ‘뻥뚫어’로 해결하면 어떨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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