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시는 물론 퇴임 후의 행적으로 주목받고 평가받는 게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다. 때에 따라 기록으로 남고 고스란히 역사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권 운동으로 각인된 토머스 제퍼슨 자신은 노예를 130여명이나 거느리는 이중성으로도 기억된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은 쿠데타로 추방될 때까지 심심찮게 집무실로 10대 소녀들을 끌어들였으며 무지무지하게 도덕적일 것 같은 케네디도 (생물학적 의미의) 처녀이거나 친구의 누이이거나를 가리지 않는 풍객(風客)이었다.
요즘 스팸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 이메일을 통해 달나라를 보내주겠다고 제의해 온 경매업체가 있길래 웬 만우절 이벤트인가 싶어 이곳저곳을 뒤지니 전・현직 대통령 6명의 초상화에 경매를 부쳐놓고 있었다. 시작가 1000원인 대통령들의 초상화 중 박정희가 가장 비싼 6만7000원이며 김대중 5만8000원, 전두환 7200원, 이승만 2100원, 노태우 1700원 순이었다. 김영삼은 맨 꼴치로 1300원에 낙찰됐다.
다분히 장난기 어린 이 낙찰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좀 무리가 따른다. 단지 좀 소박하게 말해 명색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면 국가원로로서 초연히 나라를 걱정하고 시민으로서 할 바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같은 전직인 김영삼과 클린턴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
미국인의 전처(前妻)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클린턴은 모건 스탠리 회사가 주최한 행사에서 10만달러를 받고 강연했지만 한 금융회사가 그의 뒤이은 강연 일정을 돌연 틀어버려 망신살이 뻗쳤다. 김영삼은 고려대 강연을 하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학생들과 대치한 전력이 있다.
두 사람은 무엇이 모자랐던지 그것이 스타일 구기는 짓인 줄 모르고 정치적 외연 넓히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뉴욕 할렘가에 사무실을 냈고, 한 사람은 민주산악회 회원들과 등산을 한다고 법석이다. 구경꾼들이 몰려들면 신이 나서 즉석 연설을 하는가 하면 어천만사(於千萬事)에 딴지를 걸고 입지를 굳히려 한다. 서점가에선 김영삼의 회고록이 베스트 셀러 상위에 랭크된 적이 있고, 클린턴도 회고록을 냈다. 이만하면 호형호제가 따로 없다.
앞에서 썼지만, 땅콩 농부 출신 지미 카터는 퇴임 후에 해비타트라는 집지어주기 운동으로 현직 시절보다 갈채를 받고 있다. 앞서의 두 전직에 비해 자신이 전직 대통령인지조차 까맣게 잊은 채 웃기만 하는 치매 상태의 레이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죽어지내는 우리 몇몇 전직들이 웬일로 더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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