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주십시오. 내가 누구인지, 무얼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발 나를 좀 찾아 주세요.”
청주에서 한 청년이 파출소에 찾아와 이런 이상한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뒤에 그 청년은 누이를 만나 잃어버린 ‘나’를 찾았지만, 가끔 이 청년처럼 외치고 싶어진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현대인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열나게 집착한다. 가장 오래된 과학인 천문학을 업으로 삼는 극히 일부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천문학자는 과거를 먹고 산다. 노자로, 논어로 사는 도올과 엇비슷하다.
그들이 보는 과거는 도올에 비할 때 아득히 멀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쳐다보는 하늘은 차라리 아득한 창세기의 빛이라 해야 옳다. 오늘 밤 은하계 저편에서 별 하나가 폭발한다면, 그리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몇만 년 후의 천문학자가 그 섬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추어이건 프로이거나를 막론하고, 천문학자가 추구하는 가치 또한 군자의 덕과 상통한다. 별은 그냥 별이 아닌 까닭이다. 별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순수와 꿈인 까닭이다. 현대인들은 직접 하늘을 보고 별을 만나지 않는다. 도올을 통해 공자를 만나고 달라이라마를 만나듯, 그나마 ‘어린 왕자’를 통해서 만나면 다행이고, 인기 있는 스포츠나 연예인을 스타라 해서 모조품 별로 만들어서 만난다.
젊은이는 스타를, 늙은이는 스캔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이 들면 모조품이건 진짜건 다 외면하기 마련이다. 며칠 전 사람들은 드디어 ‘통일’이라는 우리말을 가진 별이 탄생했다고 감격해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처음이 아니다. 도쿄천문대 후루카와 기이치로가 우리말로 붙인 ‘관륵’과 ‘나’,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가 와타나베 가즈오가 붙인 ‘세종’에 이은 네 번째이다. 국제 천문학계의 공평한 관행은, 발견한 사람이 원하는 이름을 붙인다.
남들이 연장 탓, 장비 탓만 하고 있을 겨를에 프로 이상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 천문가 이태형은 성능도 별로 신통찮은 망원경으로 지름이 불과 5~10km인 ‘통일’별을 찾아냈다. 몇 달을 날밤을 새기도 하며 남들이 깊이 잠든 밤에 홀로 눈 떠 그가 자기만의 작은 별을 찾아낸 날, 내 일기장엔 꽤 몽롱한 낙서가 끄적여져 있다. ‘렌즈를 돋워 관측을 하지만 별이 없다. 렌즈를 닦고 보자는데도 보이질 않는다. 내가 내 자리라고 여겼던 눈썹 위 천공(天空)은 순전히 허구. 렌즈 없이도 별을 보게 될 때 나는 이미 내가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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