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맨’이라는 자신의 노래 때문에 피아노 맨이라는 별명이 붙은 빌리 조엘이 함께 나와 우정을 과시할 땐 언젠가 그가 조지 마이클과 서로 번갈아 앨범 작업을 도울 때 느꼈던 흐뭇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마치 왕년의 송창식과 윤형주를 연상시켰다.
집에서 우리 아이들, 수지와 영광이의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실력을 미처 모르다가 우연히 조성모의 ‘가시나무’나 송대관의 ‘네 박자’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을 때, 그 감상이란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미완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을 처음 듣고 여가수 마리브란은 감동 끝에 졸도했고 루슈르라는 교수는 “모자를 쓰려 해도 나의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존 덴버의 ‘선샤인 온 마이 숄더’에도 가느다란 한 가닥 전율이 깃들여 있다. 재즈에 있어서도 모던 재즈의 심각함 대신 대중에 다가서는 낭만적 가벼움이 좋은 퓨전을 들으면 신선미로 가득한 산들바람을 느끼게 된다.
어느덧 불가사의한 전설이 되어버린 비틀스가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꾼 요인은 블루스, 재즈, 전자음악, 인도음악, 관현악 등 여러 음악 유산들을 로큰롤이라는 가마솥 안에서 푹 삶아 뭉뚱그려내는 독창성 내지 놀라운 창작력에 있었을 것이다.
따지고 들면 팝・록 음악이 클래식 쪽의 골깊은 조롱과 멸시에서 벗어나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도 그들 덕분이다. ‘20세기의 작곡가들’ 반열에 팝 그룹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되었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우리 시대의 슈베르트라고 극찬했던 그들에게도 드럼 연주가 못마땅하다며 음악사(社)의 구박을 받던 서러운 무명 시절이 있었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이 네 사람은 베토벤 이후 최고의 작곡가들이라는 찬사에서 몇 발짝 나아가 비틀스학(Beatology)이라는 학문적 실체가 되었으니, 알 수 없는 게 세상 일이란 생각이다.
어떤 철학자는 그들의 ‘렛 잇 비’에서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읽는다고 했지만, 감히 나는 ‘예스터데이’에서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버섯은 한 달의 섭리를 알지 못하고……’ 하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읽는다. 정말 감히 또 나는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를 읽는다. (아아! 다시 되찾고 싶어하는 얼마나 많은 잃어버린 어제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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