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4, 제5의 도도한 물결이 보이는가. 반란을 꿈꾸며, 세상의 모든 고지를 선점해 평정할 듯 기세등등한 색깔들의 아우성이 들리는가. 인간 지성의 역사는 최장 6000년, 반면 감성의 역사는 30억년 이상 소급된다. 어쩔 땐 그래서 감성에 호소해야 설득력이 더해지는데, 그 첨병이 색깔인 것이다.
이를 간파한 기업들의 색깔전쟁이 치열하다. 영양은 넘쳐나며 맛이 평준화되자 저마다 사이버마케팅, 색깔마케팅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파랑・초록・체리색 맥주도 출현했다. 백화점 진열대의 빙과류도 색색이고 노란 콜라에서 형광빛 음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컬러 호빵, 노랑・연두・빨강・파랑 등 색을 입힌 피자, 색색의 초콜릿이 쏟아져나온다.
색깔혁명은 먹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속눈썹을 와인색, 파란색 등으로 염색하는가 하면 울긋불긋 마스카라를 칠한 여성들이 거리를 수놓는다. 선글라스만 하더라도 블루・허니・그레이・바이올렛・그린・헤이즐 등 아홉가지 색상의 프레시룩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런 추세로 색의 영토가 무한대로 넓혀져 컬러 페이스가 유행할 것이다. 만약 그때가 오면 당신은 아침바닷빛 또는 저녁노을빛 얼굴로 미소짓는 여성을 만날 수도 있다.
구태여 냉장고를 선택할 때도 백색 톤을 고집하지 않는다. 지금은 좀 주춤하나 한때 앙증스런 빨강 휴대폰이 불티나게 팔렸다. 가까운 장래에 당신은 또 그때그때 요리에 맞춰 접시를 선택하는 센스 있는 아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대번에 뒤엎는 현란한 색의 승부는 계속된다. 당진에서는 쑥, 꼭두서니로 물들인 컬러 삼베옷을 내놓았다. 외국인을 위한 노란 김치가 나오더니 수박 속마저 노래졌다. 공주 탄천면에서 농사를 짓는 어느 부부가 이 노란수박 재배에 성공했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고 기자가 찍어 보낸 흑백사진밖에 보지 않아 노란지 흰지 얼른 식별이 안 됐지만 정말로 “노랗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은’ 표리(表裏) 일체의 수박이 나올 것이다.
색은 본질상 파괴되고 변화되는 것. 색의 혁명은 다품종 소량생산, 기술 평준화로 인한 차별화의 선봉이다. 내 색, 우리 아이들, 나아가 내가 소속한 직장의 색깔은 무엇인지 챙겨 보자. 정치건 철학이건, 문학이건 칼럼 나부랭이건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목하(目下) 색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정치권은 고색창연한 색깔론에 갇혀 흑백 시대에만 머무르려 하는지, 부끄럽고 한심하다. 우리 의식도 이제 좀 컬러풀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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