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의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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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나비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우연은 가끔 필연을 낳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착각이 위대한 오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 근대 생물학 개척자의 한 사람인 나비박사 석주명(石宙明, 1908~1950)도 그런 케이스다. 그가 개성 송도고보에서 교편을 잡을 때였다. 미국인 모리스가 일본말로 ‘가이조’인 개성(開城)을 ‘게이조’인 경성(京城・서울)으로 알고 잘못 내린 일이 있다.

다시 경성 가는 열차를 무료하게 기다리던 모리스는 우연히 이 학교에 들렀다가 전시된 석주명의 나비들을 보았다.

이를 계기로 석주명의 나비 연구는 날개를 달게 된다. 미국의 박물관과 표본 교환도 가능했고 하버드대 교수의 배려로 서양 학자들에게 자신의 이름도 알렸다. 그렇게 해서 무려 60만마리의 나비를 모았으며 많은 나비에 이름을 지어 붙였다. 게다가 그는 언어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경성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서 근무하면서는 제주 방언을 연구해 ‘제주도 방언집(濟州道方言集)’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6․25 때 총에 맞아 죽었다.
전남 함평의 나비곤충연구소에 가면 정헌천 소장이 있다. 유년기의 현란한 날개 빛깔이 그리워 나비에 흠뻑 빠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는 그리움을 아는 사람이다.

원래 수학도인 그는 전공을 버린 대가로 260여종 5,000여점의 나비를 채집했다. 또,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친 5만마리의 나비를 직접 길렀다.

‘넓푸른 잎사귀 위/ 와불(臥佛)이듯 누운 풀벌레는 없고/ 나비가 살풋 앉아 있다./ 내가 알던 잎푸른 나무숲/ 예전에 벌레였던 몸 벗은 나비./ 황홀히 바라보다/ 지척이 웬일로 슬픔인 몸/ 공허를 더듬어 기어오르던/ 감각의 몸이 그립다.’

나비를 보고 그를 보니 떠오르는 탁영환의 ‘공허를 가다’ 중의 일부다. 그에게도 석주명처럼 작은 계기가 있었다. 방송국 PD 시절 나비 생태를 다룬 프로그램에 출연한 시골 군수를 만난 일이 인연이 됐던 것이다. 그의 손에 의해 환상적인 생명을 단 나비들은 나비축제가 펼쳐진 그곳 드넓은 유채꽃, 자운영 꽃밭을 수놓았다.

잘하면 서울에도 나비들이 형형색색으로 날갯짓을 하는 명소가 생길 전망이라 한다. 이화여대 자연사연구소가 난지도 생태공원과 서울 상암동 경기장 앞 평화의 공원에 토종나비 3만마리를 성충과 애벌레, 번데기 등 각 성장단계에서 놓아기르기로 했다.

이 나비들이 경기장 주변에 머물러 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나비떼가 너울너울 춤추는 환상의 공간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된다.
어느 도시에서건 이처럼 기생나비, 작은멋쟁이나비, 귤빛부전나비 등이 맘껏 날게 할 수 없을까? 훨훨 날아 산으로 들로 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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