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전쟁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오클랜드 출신 바바라 리 의원이 홀로 반대표를 던져 암살 협박에 시달렸다. 이라크와의 개전(開戰)을 놓고도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폐일언하고, 전쟁을 대하는 나름대로의 시각을 간추리려 한다.
첫째,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케케묵은 격언의 중요성이다. 21세기의 가장 큰 위협은 ‘전례 없는 범위와 강도를 가진 대재앙적 테러’이고 새 안보전략 없인 이를 막을 수 없다. 세계무역센터 테러 2년 전에도 윌리엄 페리가 ‘예방적 방위전략’에서 지적한 것이 족집게처럼 맞아떨어진 경험이 있다.
둘째, 결정적 혼돈(deterministic chaos)이라는 개념이 연상된다. 세상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도 안 풀리는 복잡함이 있고, 그러나 그 속에도 질서가 숨어 있다. 그 하나가 프랙텔 구조라는 것이다. 산맥이나 공활한 가을하늘 구름이거나 태안반도 해안선의 일부분을 뚝 잘라 보면 놀랍게도 전체 형상과 거의 일치하는 현상이 있는데, 그걸 말한다. 골목대장이 설치는 꼬마들 세계, 아니 인간사나 국제사회, 나아가 우주의 질서가 서로 엇비슷하다.
셋째, 다나카 아키히코가 처음 밝힌 ‘새로운 중세’가 온다는 어떤 의구심이다. 미국 주도의 질서는 일극(一極)인 것 같다가 다극(多極)이거나 ‘짬뽕’ 체제인 것도 같다. 상호의존의 관점에서는 중세처럼 국가 이외의 주체가 강해지고 냉전 종식에 따라 이데올로기는 보편화 경향을 띤다.
넷째, 다중인격장애라는 현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상태가 일관된 전체성이 없고 일시 또는 지속적인 ‘따로 국밥’으로 노는 상태다. 나는 참전 용사들을 존경하지만, 과거에 베트남전을 한사코 ‘전쟁’ 아닌 ‘분쟁’으로 부른 존슨과 닉슨, 또 미안하지만 테러를 응징한답시고 전쟁을 벌인 부시도 이 심리 현상에서 예외가 아닌 사람들로 분류한다.
다섯째, 역사 발전과 전쟁의 상관성인데, 이를테면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강경노선을 취한 건 내부 불만세력을 다독거려 체제를 유지코자 함이었다. 임진왜란은 피해도 컸지만 역설적으로 500년 왕조 존속에 기여한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은 때로 복수나 보복을 떠나 기존 질서나 체제 수호 성격이 짙다.
끝으로 지나친 적개심(hostility)은 지나친 우호(hospitality) 못잖게 위험함을 말하고 싶다. 미국 편인지 ‘불량국가’ 편인지 줄세우며 거품을 무는 것까진 몰라도, 전지구적인 테러 포럼이 형성된 마당에 굳이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면 속전속결일수록 좋다. 그렇지 않으면 전투에 이기고도 비대칭적・비전통적인, ‘테러’라는 새 차원의 전쟁에 휘말릴 소지를 안고 있겠기 때문이다.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가?
딱딱한 글을 읽게 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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