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우리 풍속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탤런트 홍석천의 말이다. 커밍아웃(동성연애자임을 스스로 밝힘)인지 아우팅(남에 의해 밝혀짐)인지를 해놓고 갖은 불이익을 당하는 그를 보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오스카 와일드를 연상하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앙드레 지드, 번역가인 알프레드와 동성애에 빠졌다. 그러나 오래잖아 ‘부도덕한 음행’의 죄목으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모두로부터 질시와 냉대를 받다가 다락방에서 외롭게 죽어갔던 것이다.
물론 그는 청교도 모럴이 칼날처럼 시퍼렇던 시대에 살았고, 지금은 일부 유럽국가에서 동성애자간 혼인신고를 할 정도로 변했다. 한술 더 떠, 입양으로 자식을 얻던 이들이 시험관아기나, 곧 있을 인간 복제 기술의 실용화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도 홍석천에 대해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며 어깨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비웃고 욕하는 다수가 엄존한다.
그것은 동성과 이성의 선택처럼 자유일지도 모르겠으나, 뭔가 좀 망측하고 자식 교육에 안 될 것 같아서, 또는 일반 다수의 건전한 성적 정서에 위배되므로 안 된다는 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 :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 이유를 갖는다는 개념으로, 부분에 대한 전체의 선행성과 우월성을 강조한다. 당초에는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의 함정은 조심해야 한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라면 나는 동성애를 단연코 싫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혐오한다고, 비정상적으로 보인다고 짓밟을 수 없는 하나의 성적 취향이다. 매춘을 단속하는 것과 매춘부에게 통장을 만들어주고 착취를 막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인 것과 같다. 개개인의 성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구실’이 무엇이었던가. ‘한줌도 안되는 쓰레기론’이었다. 동성애자, 집시, 장애인, 유태인, 그리고 헤르만 헤세,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마스 만, 칼 야스퍼스. 광인(狂人) 히틀러의 눈에는 그들이 한줌도 안되는 부류였다.
나와 다르다는 그 다름을 근거로 동성애자를 보호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는 논리가 등등한 판에 국회에서 동성애자 인권 보호에 관한 법률을 만든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 즉 소수자(마이너리티)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사회를 향한 경험을 쌓아간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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