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최기호 교수는 ‘토박이말 쓰임사전’을 냈다. 국어사전 50만 단어에서 20%뿐이란 아주 새삼스런 결론을 내린 그는 알몸―나체―누드로 이어지는 1등(영어)・2등(한자어)・3등 언어(한글) 등 서열화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처럼 ‘과따치는’(몹시 떠드는) 문필가, ‘된정나게’(염증나게) 글을 쓰는 작가의 노력을 촉구한 성싶었다.
그분한테 지청구를 듣는 한이 있어도 3등 언어인 ‘누드’로 써야겠다. 집아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누드 명화집을 보고 음양의 이치도 모르면서 소화해낼지 걱정이었다. 녀석은 핑계랍시고, 학교에서 명화 따라 그리기를 했는데 모나리자는 미소가 어려워 ‘비너스의 탄생’으로 바꿨다고 멋쩍게 들려 준다. 조개껍질을 타고 밀려온 비너스가 한 손으로 가슴께를, 머리카락으론 아랫도리를 가리는 그 그림, 우리 동네 러브호텔 벽면에 그려진 바로 그 그림이다. 그것까지는 봐주기로 하고…… 천만 다행히도 ‘옷을 벗은 마하’는 없고 ‘옷을 입은 마하’만 있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곰곰이 생각하니 석기시대 아빠들이 서기 2002년의 끝자락에서 마흔네 살의 삶을 살아 가는 나보다 개방적이다. 원시동굴의 벽화는 무화과 이파리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였지 않은가. 누드, 누드 하니까 여행 가방 두 개로 살다 간 어느 화가 얘기가 돌이켜진다. 하나엔 빨랫감, 다른 것엔 빨래한 옷. 매일 찾아와 옷을 벗어준 누드 모델이 있었다. 화가는 결국 그의 아내가 된 모델과 가방 두 개를 놓고 죽었으며, 그 모델은 슬펐기에 아름다운 그림들로 유작전을 열었다는, 대충 그런 얘기다.
표지에 윤구병 추천이라기에 뭔가 싶어 읽은 ‘모든 것은 누드로부터 시작되었다’(시공사)에서 리차드 아머는 누드인 채로 누드를 그린 최초의 화가는 아담이라는 가설을 펴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서울에 온 뮤지컬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의 음반 음반 ‘클래식’(Classics)에 실린 세미 누드 사진을 봤을 때의 신기한 마음이 그녀의 ‘아베 마리아’ 동영상을 몇 번 보고 나서는 좀 시들해졌다.
언젠가 자신의 누드집을 만들면서 선구자적 입장에서 편안하게 옷을 벗었다는, 내가 써 둔 유연실의 말을 다시 옮겨 본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솔직히 늙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누드집이다. 딴짓 많이 하는 고급 화류계 여인들보다는 내가 낫다는 자부심도 느낀다. 나는 언제나 떳떳하다.”
가량가량한 몸매의 누드집을 내고 “전세계 여성들에게 바치고 싶다”는 홍콩 스타 종려시는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이브부터 루미오를 거쳐 종려시에서 정양과 돈 좀 벌려다가 해커들 때문에 망친 성현아까지, 미술사가 복잡하듯 누드의 역사도 되게 복잡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뇌까렸던 자신이 창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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