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 또는 실버이혼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와 접하니 이육사가 노래한 황혼이 먼저 뇌리에 맴돈다. 이 역시 일본이 선구자이지만, 원조교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대두된 황혼이혼 바람이 어느덧 우리 나라에서도 제법 거세다.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가 아니라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즈음 이혼하는지도 모른다.
굳이 사법연감이나 통계청 자료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이혼은 이제 범상찮은 문제로 인식되면서 유교식의, 남성중심의 지배구조에 쉼없는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근래에는 결혼하기가 무섭게 헤어지는 신혼이혼의 증가와 맞물려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는다. 결혼 20년 이상, 60세 이상 노인부부들의 이혼 관계 상담이 전체의 10%를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만큼 여생도 해로해라. 혼인한 당시인 50여년 전의 가치기준을 고려할 때 남편의 행동이 심히 부당한 것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법원의 판결이다. 한때는 너무도 사랑해 떨어질 수 없었을 이들에게 다소 시아버지같이 점잖은 판결도 해 보지만 여성계는 발끈한다. 여성인권에 대한 억압적 처사다, 기득권을 거머쥔 가부장적 남성집단의 입장만 대변한 몰상식한 판결이다, 라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이다. 비행과 폭행 사례를 깨알처럼 적은 55년간의 대학노트 ‘비망록’ 한 권으로 부부가 파탄에 이른 주된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는 판결을 얻어낸 억척 할머니가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70년대는 남편이 “헤어지자” 하면 아내는 “다시 한 번 생각하자”고 매달렸다. 80년대에 남편이 “우리 끝났다”고 말하면 아내는 “위자료나 내놔라!”고 요구한다. 90년대엔 남편이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면 아내는 “미친 자식, 남 걱정하지 말라”며 목청을 돋우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기초의 연대기에는 어떤 맞대응이 어울릴지 정형화하기엔 때이른 감이 있다.
대개는 결혼 초기 부부관계가 노년기의 부부 친밀도를 좌우한다. 실컷 싸워 보고 결혼하라는 건 이 때문이다. 부부싸움은 사랑의 간주곡(혹은 전주곡)이기도 하지만 젊어서 갈등 해소 방식에 서툰 부부일수록 늘그막에 이혼할 확률이 높다. 어차피 결혼관의 변화와 함께 황혼이혼은 고령화 사회의 큰 숙제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새벽은 하루의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황혼은 하루의 반복인 것(슬픈 열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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