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프로야구보다 ‘군기’가 세다는 코미디언실에서 어떤 사단(事端)이 났을 때, 주병진이 내놓은 변이었다.
주병진. 어려서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그에게 동기 부여의 원천은 오직 가난, 가난으로부터의 도피였다. 남보다 훨씬 앞질러 세상을 배워야 했던 그의 처음 직업은 신문배달. 어둑새벽의 골목길을 헤치며 좌막골 첫쪽(왼쪽 막다른 골목 첫번째집 쪽문), 우단(오른쪽 단독주택), 당사(당구장 건물 4층) 같은 암호를 대입시키며….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비가 오면요, 꼭 보급소와 가장 멀리 있는 쪽 집에서 전화가 와요. 배달된 신문이 젖었으니 다시 갖다 달라고. 환장할 일이죠? 별 수 있나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밖에.”
이후 신문사 사장실 사환, 페인트 공장 종업원, 축사 청소부, 나이트클럽 얼굴사장, 개그맨, 언론통폐합으로 실직 등등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고교 졸업 후, 가수가 되고 싶어 명동에 나갔다가 이종환의 눈에 띄어 걷게 된 개그맨의 길이지만, 어릴 적 동네어귀를 휙 지나치던 근사한 세단 속의 사장님이 되겠다는 야심을 지울 수 없었다.
스물다섯 살. 포장마차에서 바라다보이는 신축건물이 그의 몽롱한 시선을 오래도록 붙들어맸다. 그래, 나도 사장이 되는 거다. 이리저리 변통해 얻은 돈, 얼굴 하나, 거기에 두둑한 배짱, 이것이 카페 제임스딘의 밑천이었다. 술집에 이어 뛰어든 이른바 ‘빤스장사’가 히트하자 그때부터 심심찮게 추문이 따라 다녔다. 누구를 임신시켰다는 둥 그렇고 그런 관계인 모 건설회사 사장 부인이 뒤를 빠방하게(주병진의 표현) 밀어주고 있다는 둥. 그때도 그는 ‘다시 한번’을 외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요.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하늘에 맹세코 제 회사를 그냥 드릴게요.
그는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일어난 여대생과의 불미스런 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었다. “반항하는 피해자를 폭행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심”(판결문)이 있다는 재판 결과에 불복, 항소해 무죄판결을 받은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거듭한 말이 귓전을 맴돈다.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가 이번에는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구속됐다. 주병진은 자신이 ‘봉’이라며 이름 가운뎃자 ‘병’을 ‘봉’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진실이 무엇이건 판결이 어떻게 나왔건 숱한 인생의 파도를 넘어온 그가 이번에도 밀어닥친 파도를 잘 타고 넘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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