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가 된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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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가 된 나오미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밤에 무엇을 입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릴린 먼로가 “샤넬 No.5만 입어요”하고 대답했다. 온 세상 남자들을 성에 눈뜨게 했다는 먼로다운 대답이다. 영어로 ‘옷을 입는다’와 ‘향수를 바른다’는 표현이 같다(ware). 바로 이 향수로 세상의 모든 남편을 빼앗겠다는, 아주 도발적인 농담을 한 여자가 있었다. 개 잡아 먹는다고 한국 사람 욕하고 걸핏하면 편지질하는 브리지트 바르도였다.

단 한 병을 만드는데 5월의 찬란한 장미꽃 700송이와 재스민이 있어야 하고, 다시 80여 성분이 들어간다는 향수의 비밀은 전주비빔밥의 손맛처럼 알쏭달쏭하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단순해서 좋은 이 향수병이 뉴욕현대미술관 박물관에 전시된 것도 놀랍다. 코코 샤넬은 향수 조향사가 일련번호를 붙인 샘플 가운데 5번이 적힌 병을 집어들었다. 샤넬 No.5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5라는 숫자를 좋아한 샤넬은 우아하고 돈 좀 있어 뵈는 여자가 지날 때마다 스프레이로 향수를 조금씩 뿌렸다. 그러다 누가 묻기라도 하면 “글쎄, 이걸 사기는 힘들 걸요. 친구 선물로 특별히 만든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그것은 고도의 상술이었다.

향수는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2차 대전 때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샤넬 부티크가 있는 파리 캉봉가(街)로 진입했다. 오직 하나, 향수를 사기 위해서였다. 프랑스를 해방시킨 미국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이에게, 애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날마다 줄지어 한 병의 향수를 기다리며…….

제2의 코코 샤넬을 꿈꾸는 흑진주. 완벽한 팔등신. 조막만한 얼굴에 농구 선수같이 큰 키. 자메이카와 중국인의 혼혈인 영국의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우리 나라에 처음 다녀갔다.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나오매직 홍보차였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로 떴던 그녀는 국내에서도 출간된 ‘백조’라는 소설을 쓰는 등 재능이 많다. 공항에서 얼굴을 가려 기자들의 원성을 산 일에 대해 그녀는 “화장 안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라는 해명성 사과를 해놓고 훌쩍 일본으로 날아갔다.

캠벨이 남긴 어떤 미련처럼 강한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련해지는 것, 자연의 풀냄새 같은 것, 정녕 그것이 향수의 마력이리라. 소설에서처럼 그녀한테서 그이의 향기가 난다면 그보다 더한 비참함이 없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향기를,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는 향기를 좋아한다. 지금, 까닭없이 향수 한 병을 사고 싶다면 나오미 캠벨, 그녀의 광고발에 걸려 든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엉덩이. 얼굴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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