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매끄러운 오케이 장면보다 엔지 모음의 진솔한 재미에 더 끌린다. 그래선지 드라마나 비디오로 출시된 무술영화 말미에 엔지를 따로 묶어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하나의 경향이 되었다.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뉴스 진행하다 웃음을 참지 못해 책상 밑에 기어들어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는 어느 여자 아나운서의 얘기를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것이 후일담이고 아직 자리에 건재하니까 웃는 낯으로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수 있지,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체육관선거로 당선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미국 방문길에 올랐을 때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각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실황을 중계하는 중이었다.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막 하늘 저편으로 사라질 즈음, “박정희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하는 멘트가 전국에 퍼져 나갔다. 장장 18년의 오랜 세월 입에 밴 습관이 빚은 어이없는 실수였다.
어느 라디오 진행자가 멘트가 끝나고 음악이 나가는 도중 쿨룩 하는 기침 소리가 났다. 음악이 다 나가자 그는 죄송하다며, 그러나 이제야 생방송인 줄 아셨을 거라며 덧붙였다.
겨울 아침 방송.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창밖엔 지금 흰 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촉촉이 젖은 목소리가 나가자마자 너도나도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열어뜨렸다.
아뿔싸, 그런데 하늘은 말짱하고 눈 내린 흔적은 어디에고 없었다. 아나운서가, PD가, 작가가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서너 올씩 흩날리던 눈이 얄미운 햇살에 감쪽같이 녹아 버린 게 아니었겠는가. 아침 프로를 듣다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대전에는 지금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더라”는 방송 멘트에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쳐다봐도 하늘은 말짱할 뿐 아니라 겨울 햇살이 맑고 밝다.
방송가에 엔지는 ‘삼세번’이란 말이 있다. 잘못된 대목이 자꾸 되풀이된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주위에선 괜찮다고 격려하지만 그럴수록 심적 부담이 커지게 된다.
스타는 엔지로 만들어진다지만 너무 잦은 실수나 사고는 곤란하다. 이 정권도 그 정도면 리허설도 충분했고 엔지도 낼 만큼 냈다. 이왕 맡은 배역이라면 남은 기간, 그 ‘절반의 실패’를 거울삼아 누구보다 감독인 국민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멋진 대미를 장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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