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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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국학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뼈가 무려 37개가 된다는 멸치(어느 스님의 법어에서 나왔다고 함)는 잘 모르겠고 확실히 인간은 세상만사를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만을 ‘인간’으로 부른 오만도 그 탓이다.

빈 라덴은 빈 라덴의, 부시는 부시만의 생각이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소가 사람처럼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소를 닮은 신의 모습을 그릴 것이라던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도 그 나름의 생각을 했다.

케냐 작가에 ‘응구기 와 씨옹오’가 있다. 이 낯선 아프리카 사람의 이름을 거론한 까닭은 미국의 어떤 식민주의 성향, 특별히 영미문학과 언어의 식민주의 성향을 잠깐 넘겨짚기 위해서다.

씨옹오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피의 꽃잎’까지를 영어로 썼다. 이후 그는 “어떤 형태든 영어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그의 부족어인 기쿠유어로 썼다. 이 약속은 미국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지켜졌다. 왜? 언어를,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향해 저지르는 침략의 전쟁터이며 사람의 정신을 나포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로 인식한 까닭이다.

가령 오늘 사설에서도 다뤘고, 국제적으로 한창 시끄러운 우리의 ‘개’가 미국에서 dog, 독일에서 hund, 프랑스에선 chien이라는 기호로 표시된다. 소리와 부호의 규약이 다르듯이 개를 생각하는 각자의 느낌도 확연히 다르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보신탕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약간 다를 것이다.

우리들의 ‘Go man go, is man is.’(갈 사람은 가고 말 사람은 말라) 스타일의 엉터리 영어는 세계가 인정한다. 시험철에 자주 쓰는 ‘커닝’은 원래 ‘치팅’, ‘커트라인’은 콩글리시로 ‘컷오프 포인트’(cut off point)라고 해야 맞다.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아메리카 LA 코리아 타운에서 우리 교포가 교포에게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가 체포돼 자그마치 보석금 5만달러(약 6400만원)를 내고 풀려난 일이 있었다. 미국에 가려거든 꼭 죽인다는 살의(殺意) 여부를 떠나 “죽이겠다”는 ‘살해 위협’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라는 그곳 경찰의 판단을 유념해야겠다.

우리 한국인들은 ‘죽겠다’, ‘죽이겠다’를 너무 자주 쓴다. ‘보고 싶어 죽겠다’(I am dying to see you. 오늘 ‘영어 파고들기’에 나온다. 자기네들도 쓰면서 왜 그러는지.), 꼴 보기 싫어서 ‘죽겠다’, 가스 레인지 불도 ‘죽여라’이다. 생기가 없어지거나 심지어 발기(勃起)가 잘 안 돼도 죽음이다. 오락에서 져도, 탑블레이드로 불리는 팽이가 돌기를 멈춰도 아이들은 ‘죽었다’고 말한다. 틀림없는 한민족이다.

말은 곧 숨결이므로 인류 보편의 구조보다 문화의 특수성이나 언어적 상상력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 비약해서, 꽃을 아름답다고 말해도 죄악이던 나치 시대가 반추된다. 아까 그 교포가 욕을 해서 잘 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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