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를 접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개그맨 심현섭의 익살맞은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최병서나 엄용수도 3김씨와 고 정주영 회장의 흉내를 곧잘 내서 사람들을 웃겼다. 정치인을 위시한 저명인사 흉내내기는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역대 대통령을 다 모아다 정치 코미디의 소재를 삼은 일도 있다.
이런 이미테이션은 연예계에 아주 흔하다. 이를테면 ‘너훈아’라는 예명을 가진 사람은 가수 나훈아의 용모와 노래를 모방하여 밤무대에서 활동한다. 때로 이 진짜와 가짜들은 서로의 ‘인기’를 위해 친분을 과시한다. 조용필, 설운도, 김수희 등을 쏙 빼닮은 인물들의 모임을 보면 포복절도하게 된다.
제5공화국 때는 전두환 대통령을 닮은 탤런트 박용식의 연예활동이 금지의 굴레에 갇혔다. 요새의 시사만화처럼 슬슬 언구럭을 부렸다간 어디 끌려가서 매우 맞았을, 살벌한 시절이었다. 닮았다는 이유로 적잖이 7년의 세월을 묶여 지낸 그 탤런트는 훗날 자신이 닮은 권력자에게 ‘위로’받았지만 그 억울한 번민의 나날들을 일거에 보상받진 못했으리라.
우리가 흉내내기라면 뺄 수 없는 사람이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다. 성악가 카루소의 목소리든 뭐든 척척인 모방의 천재였지만 실제 그는 음치였다. 언젠가 그가 시골여행을 하고 있었을 때마침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렸다. 채플린도 이 대회에 출전해 연기를 했으나 결과는 3등이었다. 채플린보다 더 채플린 같은 가짜 채플린에게 어이없이 밀리고 만 것이다.
미국의 드림웍스는 새 애니메이션 ‘슈렉’을 만들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든 그 영화사다.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는 디즈니 출신으로서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에 의해 쫓겨난 원한을 갖고 있다. 한데 동화 속 주인공들을 못살게 구는 악당 ‘파쿼드’가 아이즈너 회장을 닮았대서 화제다. 초상권을 심하게 따지는 미국이지만 별다른 뒷얘기는 없었다.
문제가 된 배은식 씨는 “닮았다는 이유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고 항변한다. 그의 말을 뒤집어, 닮았다는 이유로 남의 인격권(초상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심의기구의 ‘초상권 침해의 우려’나 한쪽 정상을 ‘희화화’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일리가 있긴 하지만, 전례에 비추더라도 개인의 광고 활동은 폭넓게 보장될 부분이다. 필요하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동의를 구하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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