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1%의 신화를 버리는 대신 22%라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둥근 원 속에 정사각형을 내접(內接)시키면 원의 면적과 네 귀퉁이의 총합면적 비율은 78 대 22이다. 공기 중 산소와 질소도 78 대 22, 인체의 수분과 유기질(칼슘, 인산 등) 비율도 78 대 22로 되어 있다.
나는 자물쇠를 22%밖에 믿지 않는다. 외출할 때 자물쇠를 완벽하다고 믿을수록 도둑에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표적이 됨을 헤아려야 한다. 나머지 78%는 도둑의 몫이니, 그것은 도둑 눈에 주인이 없다는 무언의 사인일 수도 있다. 비싼 ‘비밀번호’ 열쇠로 바꾸어도 별반 다르지 않아, 시간을 좀 지연시켜 도둑을 귀찮게 해줄 뿐일 것이다.
유태인들의 처세훈에도 22% 사상이 있다. 살아가는 시간의 22%는 자기와 신만의 세계로 접어두는 가장 균형잡힌 인생관이다. 그래선지 그들에겐 광신자가 없다. 지폐에다 ‘오직 예수’라고 도장을 찍고 불상의 머리를 자르는 사람들은 22%가 아닌 100%의 환상에 사로잡힌 까닭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한국경제신문사)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의 정확도를 80%로 보았다.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인간 행동은 문화적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와 문화는 분리될 수 없다.
“아시아적 방법이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80%는 옳고 20% 정도가 나쁠 것이다.” 이렇게 김우중이 ‘아시아적 방법’을 토로했을 때 나는 그것을 22%의 미학으로 착각한 나머지 멋모르고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회고록을 썼을지라도 지금처럼 인터폴에 의해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황에서는 22%의 여유와 관조가 도저히 불능일 것이고, 솔직함도 담길 수 없을 것이다. 변호사는 ‘김우중 리스트’를 부인하지만, 부정한 돈을 받고 혹 떨고 있을지 모를 군상(群像)이 오버랩된다. 연애편지로 유명한 로비스트 린다김의 자서전도 나온 판이다. 쓸데없는 생각인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온 이선희의 노래가 자꾸만 가슴을 후빈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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