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산에 대한 예의

  • 오피니언
  • 문화칼럼

문화 유산에 대한 예의

  • 승인 2004-03-04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고려 15대 왕 예종은 개국 공신인 신숭겸과 김락을 기려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었다. 신숭겸은 후백제군과 싸우던 주군 왕건이 위기에 처하자 왕건의 옷을 입고 싸우다 대신 숨졌다. 대구 공산(팔공산)의 신숭겸 유적지가 관광 명소가 된 것은 순전히 드라마 덕인 듯하다.

지난날 요정정치의 상징인 서울 삼청각과 옛 안기부장 공관이 ‘문학의 집’으로 태어나 시민 품에 안겼다. 부실 운영이 지적되지만 차차 개선하면 될 일이다. 유서 깊은 공주 영명중・고 구(舊) 본관과 논산 금성다방 등의 등록 문화재 지정도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이와 함께 설렁탕의 유래가 서린 서울 선농단(先農壇)이 유형문화재에서 곧 사적(史蹟)으로 승격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반가운 것은 정확히 10년 전 설렁탕이 선농제(先農祭)에서 유래했다는 ‘설(說)’을 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경칩 후 처음 돌아오는 해일(亥日)에 선농단 언저리에서 한 해 농사 잘 되게 해주십사 빌던 제사가 ‘선농제’였고, 여기 모여든 신하와 백성들이 한데 어울려 소의 머리, 족, 무릎 도가니, 뼈다귀, 내장 할 것 없이 뭉뚱그려 뽀얘지도록 푹 삶아서 밥을 곁들여 먹던 것이 ‘선농탕’이라는 요지였다.(선농탕→설농탕→설렁탕)

그런 가운데 비보가 날아들었다. 중국 충칭(重慶)시에 있는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건물이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헐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우리 정부가 한 일이라곤 그 자리에 건물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주도록 요청해놓은 것 정도가 전부다.

그간 우리는 민이든 관이든 문화재에 대해 너무 무례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그 예로 ‘구지봉’을 놓고 보면 삼국유사에 나온 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구지가)라는 가락국기 수로신화가 서린 곳이다. 이곳이 사적으로 지정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신라 원성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냥했던 곳으로 팽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가 기품 있게 어우러진 ‘유림숲’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이다. 순전히 교통 체증 때문이라 한다.

지금도 서울역의 네오비잔틴 양식의 돔을 보고 섰노라면 한반도의 심장부에 온 느낌으로 가슴이 설렌다.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라면 과거 ‘역사 바로 세우기’란 것이 한창일 때 이 ‘작은 동경역’이 허물어질까 대단히 걱정이었다. 그것이 어떤 이력을 지녔건 자랑스러우면 긍지로, 치욕이면 치욕인 대로 보존해 교훈을 삼자는 것이 내 역사관이기도 하다.

하찮은 유산이라도 부수고 스스로 없앤다면 탈레반이 바미얀 석불에 기관포를 쏘아댄 것이나 크메르루주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왕궁과 사원을 파헤친 무식함에 비할 때 오십보백보 아닐까? 1936년생인 옛 산업은행 지점 건물을 살리려는 ‘운동’이 가시화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꼭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