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요정정치의 상징인 서울 삼청각과 옛 안기부장 공관이 ‘문학의 집’으로 태어나 시민 품에 안겼다. 부실 운영이 지적되지만 차차 개선하면 될 일이다. 유서 깊은 공주 영명중・고 구(舊) 본관과 논산 금성다방 등의 등록 문화재 지정도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이와 함께 설렁탕의 유래가 서린 서울 선농단(先農壇)이 유형문화재에서 곧 사적(史蹟)으로 승격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반가운 것은 정확히 10년 전 설렁탕이 선농제(先農祭)에서 유래했다는 ‘설(說)’을 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경칩 후 처음 돌아오는 해일(亥日)에 선농단 언저리에서 한 해 농사 잘 되게 해주십사 빌던 제사가 ‘선농제’였고, 여기 모여든 신하와 백성들이 한데 어울려 소의 머리, 족, 무릎 도가니, 뼈다귀, 내장 할 것 없이 뭉뚱그려 뽀얘지도록 푹 삶아서 밥을 곁들여 먹던 것이 ‘선농탕’이라는 요지였다.(선농탕→설농탕→설렁탕)
그런 가운데 비보가 날아들었다. 중국 충칭(重慶)시에 있는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건물이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헐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우리 정부가 한 일이라곤 그 자리에 건물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주도록 요청해놓은 것 정도가 전부다.
그간 우리는 민이든 관이든 문화재에 대해 너무 무례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그 예로 ‘구지봉’을 놓고 보면 삼국유사에 나온 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구지가)라는 가락국기 수로신화가 서린 곳이다. 이곳이 사적으로 지정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신라 원성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냥했던 곳으로 팽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가 기품 있게 어우러진 ‘유림숲’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이다. 순전히 교통 체증 때문이라 한다.
지금도 서울역의 네오비잔틴 양식의 돔을 보고 섰노라면 한반도의 심장부에 온 느낌으로 가슴이 설렌다.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라면 과거 ‘역사 바로 세우기’란 것이 한창일 때 이 ‘작은 동경역’이 허물어질까 대단히 걱정이었다. 그것이 어떤 이력을 지녔건 자랑스러우면 긍지로, 치욕이면 치욕인 대로 보존해 교훈을 삼자는 것이 내 역사관이기도 하다.
하찮은 유산이라도 부수고 스스로 없앤다면 탈레반이 바미얀 석불에 기관포를 쏘아댄 것이나 크메르루주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왕궁과 사원을 파헤친 무식함에 비할 때 오십보백보 아닐까? 1936년생인 옛 산업은행 지점 건물을 살리려는 ‘운동’이 가시화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꼭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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