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가 그렇지만 농사짓기도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수든 수출이든 앙증맞고 빛깔과 향기가 좋은 농산물이 잘 팔린다. 맛과 영양만을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멋까지 들먹이기에 이른 오감(五感)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맛’과 ‘멋’이 같은 어원(語源)인 건 조상님들의 탁견(卓見)이었다. 참외만한 수박, 새알 크기의 감자가 나오는가 하면 오이, 옥수수, 가지 등이 손가락만큼 작아진다. 사과 맛과 향기의 애플민트, 레몬향이 밴 레몬밤, 페퍼민트 등 향기나는 향신(香辛) 채소도 벌써 나왔다.
기호가 다양화함에 따라 수출하기도 만만찮다. 유럽은 작은 사과를, 미국은 왁스 코팅된 사과를 선호하듯이 그 까다로운 취향에 일일이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어려움 속에 배, 감귤, 채소 조제품 등은 미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부여 세도면의 방울토마토, 논산 지산동의 냉동딸기, 청양 장평면의 멜론도 일본 등지에 수출된다. 감, 감귤주스, 유자 등의 고급과일, 인삼・버섯 등 특용작물, 고급 산나물과 약초 등도 유망 품목이다.
그런데 농민이나 관련단체에선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아득바득 안간힘을 쓰는 그 한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일부 속좁은 기업들은 간장, 고추장, 된장으로도 모자라 새우젓에서 무말랭이까지, 고구마순이나 곶감, 심지어 김치마저 수입하기에 바쁘다. 그래도 이건 좀 약과라 할 것이다.
국산 포도주회사가 외국산 포도주를 수입해다 팔고, 과일통조림회사에서 과일 통조림을, 제과회사에선 과자와 스낵을 수입하는 것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맛좋은 우리 신고배 묘목을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주에 심었지만 제 맛을 가진 배를 만들지 못해 포기했다는 일화가 무색해진다.
과일은 공산품과 달라서 그 나라 고유의 기후라든가 토지의 산물이다. 신토불이다 뭐다 들먹이기 전에 우리를 어연번듯하게 키워 놓은 부모 형제들을 생각해서라도 명절 선물만은 우리 과일로, 정 안되면 차례에 올리는 과일만이라도 우리 것으로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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