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하는 인간! 인간의 특질을 규정하는 것에 ‘놀이하는 인간’이 있지만 이 지면을 통해 따로 ‘내기하는 인간’을 감히 추가하고자 한다. 바둑 한 판 두면서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걸어야 하고 부부끼리 심심풀이로 화투를 쳐도 그냥 하는 법이 없다.
원시 벽화에 도박인지 내기인지를 하는 장면이 그려진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본다. 세상의 하고많은 도박 결사체와 탤런트 손지창 일가가 ‘대박’을 터뜨린 도박도시 라스베이가스도 그래서 생겼다.
인터넷상에는 ‘내기’ 사이트가 만원을 이룬다. 갈대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함으로써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에 스페인의 다른 선원들이 건넜음을 입증하려는 실제 모험을 놓고 내기가 걸려 있다. 선택지(選擇肢)는 ‘6주만에 횡단에 성공한다, 6주 이상 걸려 성공한다, 성공하지 못한다’ 등 3가지다.
양념통닭 즉석행운권을 경품으로 주는 밥값 내기 사이트도 개설됐다. 어떤 곳에서는 김제경과 김경훈이 벌이는 ‘보은의 한판 대결’에 관해 베팅을 기다린다. 무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는 국제 태권도챔피언십대회. 이밖에 한창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프로야구 순위를 알아맞히는 문제도 올라 있다. 경기를 마친 후 각팀의 순위는 어떻게 변할까, 또한 2위 팀은 어느 팀일까 하는 것이다.
왕년의 특급스타 선동열(한국야구위원회 홍보위원)과 한대화(동국대 감독)라면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들은 프로야구 올스타전 전야제 때 ‘선동열이 공 10개를 던지는 동안 한 대화가 홈런 1개라도 치는가’를 놓고 내기를 했다. 지는 사람이 100만원을 내며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쓴다는 단서를 달았다. 아니나다를까, 인터넷의 내기 사이트엔 잽싸게 이 내기를 놓고 또 다른 내기를 걸고 있다. 같은 돈내기라도 밉기는커녕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왜 정당 수뇌부의 내기 골프 문제는 좀체 식지도 않고 국민을 분노에 떨게 하는가. 국회 앞에서 이를 비난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의 본질은 “10원 한 장 오간 것이 없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민맹(民盲)이라는 신조어가 나왔지만,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행동거지는 물론 말 한 마디라도, 농담일지라도 조심할 일이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비불루스, 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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