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다 좋은 일만 바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딱 맞게 3분의 2 정도는 행운을 보장하는 예언, 반드시 행운은 아니지만 불행도 아닌 내용을 더하면 거의 4분의 3이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이다.
전체 6912개의 글귀를 분석해 보면 길운을 예언하는 것이 3318개, 나쁘지도 좋지도 않고 무난한 것 1587개, 나쁜 것 2017개로 나온다.
이 예언서의 저자로서, 이름보다 아마도 마포에 파고 살았다는 땅굴 덕에 지어졌을 토정(土亭)이라는 호가 더 알려진 이지함은 행적 또한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보령에서 한 말 밥을 먹고 이틀을 걸려 서울까지 걸어갔다는 둥 졸리면 그냥 지팡이를 짚고 선 채로 잤다는 둥 하는 것 일색이다. 일찌감치 상업에 눈떠 무인도에 박을 심고 바가지를 만들어 팔아 모은 곡식으로 가난을 구제하고 홀연히 떠난 대목에 이르러서는 흡사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許生傳)의 주인공을 닮아 있다.
말년에 포천 현감과 아산 현감을 잠깐 지내기도 한 토정은 스승 화담 서경덕과 함께 당대 상수학(象數學)의 대가였으며, 율곡 이이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가 144가지의 괘(卦)를 배치해 놓은 규칙성이라든지 좋은 예언과 나쁜 예언을 적절히 배치한 시도에서는 수학적 질서를 찾고자 했던 집념이 읽힌다. 우주가 어떤 수학적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는 생각은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 과학과 수학을 꿰뚫는 사상이었다.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런 수학적 신비주의를 대표한다.
다른 무엇보다 토정비결의 인기 비결은 한 해 운수가 괜찮거나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 전체의 신수가 144가지로 나누어져 40만 가까운 사람들이 같은해 똑같은 운명에 처하는 기막힌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토정의 임종을 앞두고 누가 앞으로 운명을 점쳐 줄 것인가는 부인의 물음에 대한 답 또한 걸작이다.
“어찌 내가 사람의 운수를 미리 알겠소. 내가 아는 척 하지 않으면 어차피 아무데나 가서 알아 볼 것이니 그저 아는 체 했을 뿐이라오.”
나도 토정비결을 보기는 본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내 마음대로 적용한다. 기분 나쁜 괘는 조심할 뿐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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