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성황후’의 인지도에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 뮤지컬 ‘명성황후’의 서막이다. 저간에 펼쳐진 괴이쩍은 풍경도 뮤지컬과 얼른 분간이 안 간다. A급 전범을 두둔하는 일본 총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색깔 타령이나 일삼는 이 나라 정치권은 개화파와 수구파의 지루한 싸움을 빼쏘았다.
기획 당시 웬 명성황후냐고 뜯어말린 것과는 사뭇 달리 치솟는 인기는 단순히 반사이익만은 아닌 것 같다. 꽁치 분쟁, 신사 참배, 들끓는 반일 감정에 애국심을 버무린 것이 주효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일본이 도와줬다”는 농담을 낳기에 충분하다.
‘명성황후’ OST 제작사는 일본에서의 편곡 녹음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미국의 새 뮤지션과 손잡았다. 가요계가 보낸 첫 시위였다.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해 조성모, 핑클, 고야나기, 유키, 딘 등 두 나라 가수들이 공동 취입한 프로젝트 음반은 녹음과 재킷작업까지 마치고도 발매가 늦춰진 일도 있다.
각 지역 문화계도 ‘열사 유관순’과 같은 민족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의 공연 채비를 서둘렀다. 한 오페라단은 그 배경이 일본이란 이유로 ‘나비부인’에서 ‘라보엠’으로 돌연 레퍼토리를 바꿔 달았다. 한데 막상 일본인들의 반응은 “반도인들이 왜들 저래?” 정도로 심드렁하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쯤에서 우경화된 일본 사회와 언론 전반의 흐름을 읽지 못한 점, 아주 미시적인 부분만 부풀려 바라본 단발성 대증요법(對症療法)을 깨끗이 시인하자는 거다.
개인적으로 일본 문화를 골라 먹는 재미를 놓쳐 여간 섭섭하지 않다. 관계 부처의 입장 표명이 있자 각급 교육당국과 학교 차원에서도 꼬리를 물고 교류・협력사업의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물론 결연한 의지 표명도 좋지만, ‘교과서 이후’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우리와 교류하려는 파트너들은 비교적 반한 감정이 덜한 세력인 만큼 신중한 자세를 요한다.
일본의 일부 학교에서 문제의 교과서를 정식 채택했다. 해당 지역 학생들이 그 비뚤어진 책으로 공부한다는 뜻이다. 뻔한 제 나라 역사까지 뒤집는 반문명의 그들에게 애초에 소설을 쓰라고 권유하고 싶다.
다시 뮤지컬, 13장. 미우라의 ‘여우사냥’ 지시를 받은 낭인의 칼에 명성황후는 드라마 같은 생을 접는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도 광개토왕 이전부터 죽 면면(綿綿)한 애증의 한・일관계, 그 드라마틱함에 비하면 새발의 피, 그것이지 않을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한 마디 하겠다. 나는 일본문화가 좋다. 그러면 일본은? No com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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