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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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싶은 유산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옛말 하나 버릴 게 없다. 유자황금만영 불여일경(遺子黃金萬籯 不如一經)이라. 자식에게 남겨 주기엔 황금이 가득 찬 상자가 한 편의 경서만 못하다는 얘기다. 반고의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이다. 진실로 오늘 음미할 말이 아닌가 한다.


미약하나마 사회 일각에서 ‘유산 물려주지 않기’를 알음알음으로 전개해 왔던 걸 알고 있다. 이 운동은 기독실업인협회 회원 5명의 ‘서약엽서’가 그 시초였다. 이들은 유산의 8할 이상을 복지 또는 장학재단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매년 갱신해서 품에 지니고 다닌단다.


한쪽에서 전개되는 치졸한 대물림을 보자. 부자・형제・모자 세습 등 상아탑을 우골탑(牛骨塔)으로 만드는 친인척 대물림 현상은 사학 분규의 일차적 요인이 된다. 일부 대형교회의 말썽 많은 부자간 세습도 세속의 그것을 뺨치고 비웃는다. 강남의 특정 3개구인 8학군의 상당수 아이들처럼, 돈이 많기 때문에 성적이 좋다면 이건 여간 심각한 현상이 아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호의호식하던 ‘캥거루족’ 젊은 아들이 부동산을 처분하려고 아버지를 살해한 패역 사건도 비뚤어진 상속 문화 탓이다. 부의 세습, 빈곤의 세습은 각종 사회적 안전장치를 무장해제시키고 무용지물화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평생 청부(淸富)를 쌓고 사회에 되돌린 ‘김밥 할머니’의 고귀한 뜻은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으로 피어났다. 한학자 임창순 선생도 버림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몸소 걸었다. 피땀 흘려 일군 150억원의 재산을 몽땅 종업원과 사회에 환원하고 자진 ‘명퇴’한 어느 사장님,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 살라”며 재산을 재단에 넘겼던 유한양행 유일한(柳一韓) 창업주를 또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어느 기업가는 유산 가운데서 가치가 제일 낮은 게 재산 상속, 더 저급한 건 경영권 상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철강왕 카네기는 자녀들의 ‘탤런트’와 ‘에너지’를 망친다며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버젓한 도서관 3000개를 세웠다. 부모님들께 자녀에게 돈 버는 법의 어려움과 그것을 잘 쓰는 법을 가르치자고 제안하고 싶다. 돈의 가치를 깨닫는 것도 인격 도야의 둘도 없는 과정이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열 살도 안 된 손자에게 10억원대 집을 사 주며 ‘상속세’는 ‘바보세’라고 비웃는 우리 현실에서 빅뉴스가 터졌다. 새 국세청장이 “재벌 2세와 기업사주 등 대재산가의 변칙적인 부(富) 세습행위를 적극 차단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런 언급이 아니라도 이제 재산에도 권리만큼 의무가 붙어다녀야 한다. 내 재산, 내 마음대로 내 자식에게 준다, 그게 당연하다는 미망에서 깨지 않으면 안된다.


후한서(後漢書)도 ‘유자손이안(遺子孫以安)’이라 하여, 자손에게 유산을 남기면 놀고 먹는 버릇에 빠짐을 경계하고 있다.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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