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파리 시내의 유명 레스토랑을 돌아다녔다. 자신의 와인 홍보차였다. 누구던가. 바로 보졸레 와인의 황제인 조르주 뒤뵈프다. 현재 그는 연산 3천만병의 거대 와인 업체를 운영한다.
지금도 상처를 줄이려고 손으로 포도 따기를 고집하며 송이째로 양조통에 넣는 이 보졸레의 새 술이 11월 셋째주 목요일을 기해 전세계에 일제히 출시됐다.
보졸레 누보의 ‘누보’는 새롭다는 뜻. 올 8, 9월에 수확한 포도를 숙성시켰다. 국내에 반입된 물량은 200t으로 지난해의 3배 수준이다. 오죽하면 대한항공은 특별 수송기를 띄워 이 ‘귀하신 술’을 실어날랐겠는가.
포도주의 맏물, 인간이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포도주라는 극찬을 받은 보졸레 누보는 맛으로보다는 멋으로 마신다. 사실 ‘맛’과 ‘멋’은 뿌리가 같은 말이다. 게다가 전세계인들이 그해에 생산된 포도로 만든 최초의 와인을 동시에 마시는 데 동참함으로써 낭만까지 한 스푼 섞는다.
내가 봐도, 1985년 이래 매년 되풀이되어온 이 ‘의례’의 성공 비결은 디오니소스적(또는 바쿠스적) 욕망과 썩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마케팅에 있다. 보라! 이날 사람들은 지난 여름의 햇살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기분으로 와인에 입을 적시지 않은가.
이것저것 너무 따지지 말고, 자전거를 탄 젊은날의 조르주 뒤뵈프를 떠올리며 단출히 이 작은 사치에 젖어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을 성싶다. 보들레르의 시와 함께라면 금상첨화겠다.
어느 날 저녁, 포도주의 혼이 술병 속에서 노래하더라
사람아, 오 불우한 자여, 유리의 감옥 속에, 진홍을 밀납 속에 갇혀서, 내 그대 향해 목청 높여 부르노라, 빛과 우정이 넘치는 노래를!
나는 알고 있나니, 내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 주려면,
저 불타는 언덕배기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땀과 찌는 듯한 태양이 있어야 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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