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풍납토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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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풍납토성아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지나간 일이라고 다 역사는 아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흥덕왕이 기르던 암앵무새가 죽자 수앵무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부리로 쪼며 애처로이 울다가 죽어 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더 이상 그것은 오늘날에는 역사가 될 수 없다. 금속활자에 관해서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한 줄도 쓰여진 바 없지만 세계 최고(最古)라는 타이틀을 달고 역사에 추가되었다.


일식과 월식도 옛날에는 하늘의 냉엄한 경고로서 어마어마한 역사였지만 그 신비를 알아버린 지금은 역사가 아니다. 역사를 개인사 정도로 착각하였는지 ‘기록되길 바래’ 식의 지도자나, 어느 기관장이 물러나면서 자기를 가리켜 “나의 업적” 운운한 걸 보고 실소를 참지 못한 일이 있다. 역사가 역사이기 위해서는 기록이든 실물이든 어떤 형태로든 남아야 하고 먼먼 훗날 사가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여기에 비교할 때 ‘한국의 폼페이’ 이상이면서 갖은 설움 당하고도 모자라 재건축 아파트에 묻힐 뻔한 풍납토성을 상정하면 억울하고 아찔하다. 공주(웅진성), 부여(사비성)와 함께 한성백제의 왕성(위례성)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초기 백제 유일의 문자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삼국 중 가장 유물이 적은 백제의, 가장 많은 백제 유물이 쏟아진 이 토성이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았다면 황당한 일이다.


학계에서도 몽촌토성이 왕성이고 풍납토성은 사성(蛇城)이라는 다수설에 짓눌려 짹소리 못하던 처지였다. 고작해야 3세기 중・후반 이전의 백제 역사를 삼한의 한 소국으로 보는 식민사관 안에 빗장을 걸고 있었다.


토성 내부는 빼놓고 성곽만 사적지로 지정한 역대 정권의 무식함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결과, 야금야금 들어서던 공동주택으로 1만 가구에 청양군(4만3000명)만큼의 사람이 사는 주거지역이 되기에 이르렀다. 성은 파괴되었으며, 최근까지 성벽에 건물을 세우는 무참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참다 못한 외국인들이 풍납토성을 두고 “인류 공동의 유산을 당신네 코리안 마음대로 파괴해도 되느냐”며 비난해 입맛이 소태 같던 참에 토성 안 재건축 부지에 대한 사적 지정 발표로 비로소 백제의 기원과 고대사의 큰 틀을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계 10대 역사도시가 된 신라의 경주처럼 이제 수도 서울, 백제의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키는 일만 남았다. 잘못된 과거에만 연연하는 것은 역사의 바른 교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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