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세월

  • 오피니언
  • 문화칼럼

그리움의 세월

기업명으로 쓰이는 ‘롯데’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기업명으로 쓰이는 ‘롯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로테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그룹 신격호 회장이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했던 걸로 알고 있다. 백화점에 있는 ‘샤롯데’ 광장도 ‘샬로테’에서 나온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이면 괴테가 샬로테 본 스타인에게 바친 것처럼 진한 그리움으로 꽉 채워진 사람들을 본다. 그게 사랑이고 살아 있음이다.


―내 주위는 당신의 영혼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어떤 물체도 보이지 않아요. 설령 무엇인가가 잠깐 눈에 들어오더라도 결국엔 로테, 로테, 로테, 로테, 로테, 로테…… 당신 모습만이 보일 뿐.


손으로 그린 것이 그림이라면, 그리움은 마음 붓으로 그린 그림이다. 여지껏 문학소녀인지는 알 바 없지만 이맘때쯤 어느 소녀한테서 받은 좀 쑥스런 연애편지를 공개해야겠다. 기억엔 가물거리지만 심히 표절의 냄새를 풍기는 그 편지를 원형에 가깝게 재구성하면 이렇다.


“그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까지가 그 사람입니다. 그대여, 내가 쳐다보는 저 별을, 저 달을 그대도 보고 계시면 곧 그대가 날 쳐다보시는 겁니다.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이 곧 나(我)니까요. 내가 보고 싶을 땐 이 글을 보셔요. 나 또한 그대를 그려 볼게요.”


애초에 그리움을 제대로 모르면 화가나 문인 될 자격이 없다. 처자에 대한 그리움을 저물녘 울부짖는 소나 달과 까마귀 그림에 실었던 이중섭! 그리움에 겨워 풀썩 쓰러지는 김소월은 또 어떠했는가.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초혼’은 처절하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류시화도 그리움에 관한 한 일가(一家)를 이룬다.


그리움이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거다. 금을 긋거나(劃) 그림을 그리고(畵) 글을 쓰는 일(書).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慕)은 뿌리가 같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사랑의 진실을 믿는 남자,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성상 변하는 것임을 이미 아는 연상의 여자. 가을날 본 수상한 영화 ‘봄날은 간다’에선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반세기를 넘긴 이산가족의 그리움은 살점이 찢기는 아픔이다. 그걸 연기하다니, 그리움을 모르는 자들의 소행 아닌가. 테러도 전쟁도 이와 한가지다. 세상이 뻑뻑하니 신문도 공무원도 시민도 매말랐다. 그 윤활유가 그리움이요, 그리움이란 우리들이 지상에 머무는 동안 끝끝내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낙원이었음에라.


누군가를 그리고 싶은 것, 누군가가 내 마음에 금을 그려 놓은 것.
그리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