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 우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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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 우물가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여성들의 입이 거칠어졌다고 걱정들이라지만 그리 큰일은 아니라고 본다. 본디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이 공용(共用)이고 동락(同樂)이기 때문이다. 발 없는 말은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를 도는 날개를 달았다. 루머와 전설을 모두 ‘전(傳)’으로 적는 중국인들의 선견(先見)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가십은 원시시대 이래로 있어 왔고 말의 자유가 꽃피는 시대라도 잠들지 않는다. 유비통신(流蜚通信)은 사실이 아니면서 사실 이상으로 사태의 실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은 전쟁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이면서 실제로 적의 스파이가 저지를 수 있는 위협 중의 하나인 것을 보라.


공식은 R=i×a. R은 유어, і는 중요성, a는 애매성.
특히 우물가는 일찌감치 루머와 가십의 발상지로 자리잡았다. 젊은 며느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어머니 흉보는 것을 묵인하던 성역도 이곳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라고 보면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성경에도 예수가 목을 축이며 여성들을 위로하기도 하는 등 우물가가 자주 등장한다. 이와 함께 방앗간이나 뜨개질 모임에서 여성들은 비밀스런 복음을 주고받았다. 여성들의 대화는 ‘소문이나 늘어놓는’(gossip) 짓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그 어원이 ‘하나님 형제들’인 갓십(god-sib)이라고 보면 초기 가십은 잡담이나 수다가 아니다.


통치자들은 우물가를 ‘카더라방송’의 진원지로 삼았으며 중세에는 이 우물가 모임이 ‘마녀들의 야회’로 지목됐다. 우아르테라는 스페인 작가는 ‘차가운 습기로 젖어 있는 열등한 존재들’이라는 언사를 내뱉기를 서슴지 않았다.


물보다 아낙들의 흐벅진 엉덩이가 출렁이고 밉지 않은 수다가 어울려 출렁이던 우물가, 녹음방초 혹은 가득한 풀내음. 그 푸르디푸른 종소리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낸다. 빈 우물엔 멈춰진 시간이 있다. 빈 바람만 흐르고 있다. 활어처럼 싱싱한 말(言), 돌벽에서 수직으로 상승하던 서기(瑞氣), 다 승천해 버리고 없다. 펌프 우물이 있는 풍경만이 눈에 삼삼할 뿐.


이제는 우물가가 사라진 현실에서 그들만의 수다 장소가 남성들을 배제한 술좌석일 수도, 모니터일 수도, 찜질방일 수도 있다는 차이뿐이다. 정보의 홍수에 압도당하면 신화의 세계로 도피하게 되어 있다.


가십, 대면(對面) 커뮤니케이션에서 소외된 여성들은 이렇게나마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들의 수다야말로 진실에 가까우며(R≒T) 보편적인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변호해 줄 용의가 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우물가의 신화와 향수를 되돌려 주는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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